밥 (그 손에 못 박혀 버렸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차가 오가는/좁은 시장 길가에 비닐을 깔고/파, 부추, 풋고추, 돌미나리, 상추를 팔던/할머니가/싸 온 찬 점심을 무릎에 올려놓고/흙물 풀물 든 두 손을 모아/기도하고 있다.
목숨을 놓을 때까지/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손/찬 점심을 감사하는/저승꽃 핀 여윈 손/눈물이 핑 도는 손/꽃 손/무릎 꿇고 절하고 싶은 손/나는/그 손에 못 박혀 버렸다. (차 옥혜)
아름다운 가을 어느 날, 이 시를 읽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시장 한 구석에 점심으로 싸 온 차가운 밥을 앞에 두고 두 손 모아 감사 기도를하는 어느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이 눈에 선히 그려졌기 때문이다. 늙고 왜소한 몸과 좁은 어깨, 부스스한 흰 머리, 가난하고 힘겹게 살아온 생의 시간들이 삶의 이력처럼 선명히 새겨진 얼굴, 기도하려 모은 흙물 든 주름진 거친 손…….나도 그렇게 세상 가장 낮은 자리에 앉아서도 겸허히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싶어졌다.
살아가는게 녹록치 않다고 느껴질 때면 나는 시장을 한바퀴 둘러보고는 했었다. 온갖 푸성귀와 야채, 나물들을 들고 나와 시장판에서 하루종일 거리의 바람과 비를 맞으며 하루 밥 세끼의 밥벌이를 위해 버티고 서 있던 사람들, 고단한 삶 속에서도 단단한 바위처럼 결코 쉽게 부서지지 않을 것 같던 이 땅의 어머니들에게서 나는 쓸데없는 감상이나 관념이 아닌 삶의 치열함을 느끼고는 했었다.
나와 함께 청춘을 보냈던,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아버지 없이 자랐고, 이혼을 하고, 남편없이 아이들을 키우며 열심히 살아가던 한 여배우의 죽음이 나를 며칠동안 슬프게 했었다.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서 나와 같이 나이 먹고 늙어가는 모습을 바라볼 줄 알았기 때문이었을까……. 지금까지 삶의 많은 시련들을 이겨냈던 그녀였기에 조금만 더 기운내서 살지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었다. 알 수 없는 것은 삶과 죽음의 거리가 그렇게 한없이 멀면서도 가깝기만 하다는거다.
세월이 흐를수록 ‘생명’만큼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은 이 세상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맥없이 생의 끈을 놓아버릴 만큼 삶의 무게에 지칠대로 지쳐있었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세상적인 부귀 영화들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아마 그녀는 가장 어둡고 깊은 골짜기 어느 언저리를 지나던 순간이었나 보다.
살아가는 날들 가운데 밑바닥으로 곤두박질 쳐진듯한 시간, 그 험한 골짜기만 넘어가면 햇살 환한 평원에 닿을 수 있었을텐데……비내리면 비 내리는대로, 바람불면 바람부는 대로 가슴 가득 끌어 안고 그저 하루 하루 기쁨으로 살아갔을텐데…… 때로는 개똥 같은 세상이라도 사는건 그런거라며 둥글 둥글 살아갈 수 있었을텐데……어린 아이들을 이 세상에 놔두고 홀연히 떠날 만큼 그녀 마음의 병이 그리도 깊었었는지, 같은 여자로서, 어린 아이들의 엄마로서 그녀의 죽음이 안타까웠다.
언제였던가 읽었던, 무수한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이스라엘 왕국을 세운 위대한 다윗왕이 인간적인 나약함으로 밤마다 눈물로 베개를 적시며 잠이 든다는 구약성경의 아름다운 시편들은 나에게 많은 위안을 주었었다.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인 사랑의 믿음은 세상으로부터 얻을 수 없는 위안과 마음의 평화를 주고, 자신의 문제에만 골몰하며 절망하지 않고 더 어렵고 힘겨운 상황에 처한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게 해준다.
시장 한 복판에서 먹는 차갑게 식어버린 밥 한덩어리에도 감사하며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고귀하고 아름다운지……물을 듬뿍 묻혀 그린 수채화처럼 투명한 가을날, 천국은 닿을 수 없는 아득히 머나 먼 곳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일깨워 주는, 그래서 자꾸만 나를 살고 싶게 만들어 주는 이 짧은 시 한편이 그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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