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여름 동남아 경제에 불길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7월 2일 태국의 바트화가 폭락하기 시작했다. 다음 달인 8월에는 인도네시아의 루피아화가 그 뒤를 이었고 9월에는 한국의 원화로 불길이 옮겨 붙었다. 9월 29일 외환 시장 개장 40분 만에 달러 당 환율이 1일 변동 상한선인 964원까지 상승하자 사실상 거래가 중단됐다. 다음 달인 10월 30일에도 개장 8분 만에 환율이 상한선까지 오르자 다시 거래가 중단됐다.
정부 당국은 치솟는 환율을 잡아 보겠다고 얼마 되지도 않은 보유 외화를 모두 쏟아 부었으나 이는 오히려 환 투기 세력에게 약점으로 잡혀 환율 폭등을 부추기는 역효과를 냈다. 11월 10일에는 사상 처음으로 달러당 환율이 1,000원을 돌파하더니 12월 23일에는 1960원을 넘어섰다. 한국인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IMF 사태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 때 수많은 기업이 넘어가고 대량 실업이 발생했지만 이를 이용해 재미 본 사람도 있다. 바로 환 투기꾼이 그들이다. 원화 환율이 2,000에 근접해가자 달러를 들고 들어가 원화와 한국 주식을 산 투자가들은 한국 경제가 안정되면서 환율이 내리고 주가가 오르자 엄청난 이익을 챙겼다. 불과 얼마 전까지 환율이 900대였고 주가는 IMF 사태 당시에 비해 10배 이상 올랐으니까 타이밍만 잘 맞춘 사람은 20배가 넘는 수익을 올린 셈이다.
요즘 들어 한국 원 화와 증시가 당시와 비슷한 모습을 모이자 이 기회를 이용해 한 몫 잡으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지난 13일 LA 한인타운에서 중앙은행이 주최로 열린 ‘환율 변동 및 한국 재산 반출에 관한 세미나’에는 150명 정도 오리라는 예상을 깨고 400명에 달하는 한인이 몰려 호텔 앞길이 마비되고 일부는 자리가 없어 돌아가는 북새통을 이뤘다.
이날 참석자들의 최대 관심사는 지금 같은 때 한국에 돈을 보내 어떻게 환차익을 챙길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요즘 한인 은행에도 한국 송금에 관한 문의가 쇄도해 전화통이 불이 날 지경이라고 한다. 지난 주 한 때 1480원까지 치솟았던 환율이 13일 1205원대로 떨어졌으니 때만 잘 타면 불과 며칠 사이에 20% 가까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셈이다. 게다가 이익에 대한 세금도 내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은행 이자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요즘 같이 한국에서 달러가 귀해 아우성치고 있는 때 한국으로 송금하는 것을 탓할 필요는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 책임 하에 투자를 해 이익을 남기는 것은 정당한 행위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환율이나 경제에 문외한 인 일반인들이 환 투기에 나서는 것은 위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모든 경제 현상이 그렇지만 환율 변동은 ‘신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예측이 어렵다. 요즘 같이 하루 변동 폭이 230원에 이르도록 널뛰기 현상을 보이고 있는 때는 더욱 그렇다. 나름대로 한국 경제에 대한 공부를 한 뒤의 장기적인 투자라면 모를까 요행을 바라는 단타성 투기는 아무나 할 일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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