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달간 연주와 강의차 중국을 경유하여 한국을 다녀왔다. 마치 뉴욕을 연상시키는 서울 도심은 고층빌딩들과 아파트 숲에 가려 가을 하늘의 높이를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지만 서울의 대학 캠퍼스들에서 접한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단풍들만큼은 가슴 뭉클한 대학시절의 낭만으로 다가왔다.
한국의 음악교육계는 입시와 졸업연주 그리고 시립 합창단들의 오디션, 거기에다 수많은 음악회와 공연들로 학생과 교수 모두가 빡빡한 일정에 숨 가빠 보였다. 코리안 챔버 싱어즈 연주에 출연차 서울 근교 신도시 군포로 가면서 접한 풍경은 마치 LA근교 발렌시아와 어바인을 합쳐 놓은 듯하였고, 문화예술회관에 꽉찬 공연 스케줄이 놀라웠다. 또 지방들은 저마다의 색채대로 민속 공연과 축제와 더불어 각종 연주회와 오페라 공연, 그리고 예술제들로 분주해 보였다.
한국에 도착하였던 주간에는 현대음악 작곡가 진은숙의 음악으로 채운 음악회가 있었고, 그 다음주 대구에서는 창작 오페라 ‘천생연분’이 공연되었는데 작곡자 임준희씨와 잠시 만날 기회가 있어 반가웠다. 서울서 강의하는 중간 들렀던 예술의 전당에서는 스윙글 싱어즈가 사람의 목소리로 빅밴드 재즈를 들려준 흥겨운 시간이었고, 이네사 갈란테 독창회는 깊이 있고 아름다운 예술성의 극치를 선사했다. 그리고 세종문화회관에서는 LA에 거주하는 중국 출신 클라리네티스트 백철(중국 클라리넷 협회 회장)이 ‘중국 최고’의 명성에 어울리는 걸출한 연주를 들려주었는데, 특히 피아니스트 임미정(한세대교수)과의 호흡은 뜨거운 열정 이었다.
광주를 가던 주간에 광주 비엔날레가 개막하고 있었고, 광주 강의를 마친 후 들렀던 순천만은 마침 갈대축제의 마지막 날로 먹거리들과 흥미로운 풍물놀이들이 많았고, 호떡만한 토속 해물 녹두전은 신선한 점심이 되었다.
이상기온 덕에 곡식과 과일이 모두 풍년이라 농악대 차림의 할아버지들도 나이를 잊은 듯 덩실덩실 신이 났다. 청년 남성들이 보여준 우리 고유 타악기 앙상블 한판 무대는 온몸에 신명난 진동을 주었다.
한편 전남 나주에서는 광주 빛소리 오페라단(단장: 최덕식 교수, 광주대학교) 기획의 창작 오페라 ‘장화왕후’가 왕건의 부인이 되어 고려를 창건하였던 나주 출신 버들 아씨의 진취적인 여성상을 소재로 시가 재정을 지원하여 전라 지역 출신 재능들을 잘 활용한 대성공작 이었다. 경남 진주에서는 개천예술제가 막 끝났고, 마산은 가고파 국화 축제로 한창이었다.
한국 인구의 삼분의 이가 서울과 경기도에 집중되었다지만 우수한 인재들이 활약하는 지방 음악계를 목격한 이번 한국문화가도순례에서 문화마저 서울경기편재는 아닌 듯 느껴졌다. 도심아파트 숲이 자연을 가려버린 건 가슴 아팠지만 한국문화의 얼굴을 보여주는 각 지역의 활발한 활동은 한국문화의 미래에 희망적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지역 선생님들의 힘겨운 노고가 결코 헛되지 않아 좋은 열매를 맺고 있었다.
라디오서울 ‘김양희의 이브닝 클래식’진행, sopyh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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