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새 해에 끊어야 할 것,은 술도 담배도 아닌, 아이스크림이다.
사실 나는 거의 매일, 밥 먹듯이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마약이 이렇게 끊기 힘들까 싶게 나는 아이스크림을 끊지 못한다.
물론, 아이스크림이 썩 좋은 음식이 아니라는 건 잘 안다. 아니, 좋기는 커녕 무슨 유화제인지 응고제인지 따위가 들어가 있어서 몸에 해롭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 뿐일까, 내가 먹어치우는 아이스크림은 차곡차곡 허리 둘레로 고스란히 쌓여 내 건강을 위협한다는 것도 절감한다. 그런데도 아이들에게 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줄 때면, 다른 사탕이나 과자를 집어 줄 때 보다 양심의 가책을 덜 받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과다한 설탕에 찌든 약간의 우유나 크림이 칼슘의 주 공급원이 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수퍼 전단지를 샅샅이 살피면서 어떤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세일하는 지 꼭 확인해본다. (그렇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의 지조있는 아이스크림 사랑이 그로서리 마켙에 국한되어 있다는 사실이랄까) 부페에서 외식할 기회가 생기면 아무리 배가 불러도 꼭 아이스크림을 ‘입가심’으로 먹고서야 자리를 뜬다. 누군가 우리집에 놀러오면 디저트로 아이스크림 권하는 걸 잊지 않는다. 이런 지경이지만 그래도 이 나쁜 습관만은 대물림하고 싶지 않아 아이들에게는 아이스크림 인심이 인색한 편이다. (흠, 대략 합리화)
내 기억속의 온갖 빙과류들, 그렇니까 서주 아이스주, 스크류바, 영스타, 싸만코 등을 제치고 단연 우뚝 자리잡은 놈은 투게더와 부라보콘이다. 식구들 둘러 앉아서 한 숟갈씩 퍼먹다 보면 어느새 바닥이 보였던 달콤한 바닐라 아이스크림, 눈처럼 하얗고 보드라운 그 맛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리고 아빠가 가끔 퇴근길에 사 오셨던 알롤달록 하트모양 포장이 예뻤던 부라보 콘, 그런 날은 더 빨리 더 많이 먹어야 한다는 조급한 긴장감에서 해방되어 가능한 느릿느릿 아쉬운 내 몫을 즐기곤 했었다.
“엄마는 좋겠다, 엄마 맘대로 먹고싶은 거 다 먹어서.” 아이들의 질투어린 공격에 “야, 엄마는 어른이쟎아. 엄마도 너네 나이 때는 할머니가 주는 것만 먹었어!” 라고 항변해 보지만, 사실은 아닌게 아니라 먹고 싶은 때에 먹고싶은 것을 먹을 수 있는 자유가 주어져서 아주 행복하다. (아, 너무 본능적이라 부끄럽다.)
친구들이랑 몰려가 주머니 돈 푼 모아 이것 저것 골라 담고 숟가락 서너 개 꽂아 함께 먹던 그 아이스크림 체인점에서, 나는 한 번도 호호할머니나 할아버지를 본 적이 없었다. 엄마와 함께 온 꼬맹이들이거나, 교복 입은 학생들이거나, 연애하는 커플들이거나. 하지만 여기선 남녀노소 할 것없이 ‘애처럼 하드를 입에 물고’ 있는 사람들 투성이다. 미국 할머니들은 이도 안 시리단 말인가?
너무 추워 옷을 한 겹 더 껴입고 발치에 작은 히터를 튼다. 신경숙 소설의 어느 주인공처럼 아침밥 대신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경지에 이르게 될까봐 조금쯤 걱정을 하면서도, 역시 아이스크림은 진정 겨울에 먹어줘야 한단 말이지, 하며 열심히 숟가락질을 하는 내 모습. 참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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