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일학년때였던 것 같다. 당시 경기도 수원에 살던 우리 가족이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고 수원의 팔달산에 올랐던 기억은 내 유년시절의 따스한 추억의 한 장면이다. 어린 나이에도 영화의 감흥에 흠뻑 젖었던 그 날 오후의 기억이 지금도 푸근하게 느껴진다.
영화를 좋아하셨던 아버지 덕분에 가족이 함께 영화본 기억이 여럿 나고 TV에서 방영했던 미국 드라마 ‘보난자’, ‘초원의 집’ 등등도 아버지 옆에 앉아 빠짐없이 보았던 기억이 있다. 잘 이해되지 않는 장면은 아버지의 설명을 들으며 마음 속으로는 늘 나쁜 나라 사람, 좋은 나라 사람으로 나눠 이해하곤 했던 유년의 기억들… 입시를 앞둔 고3때에도 나의 드라마 사랑은 식을 줄 몰라 시험기간에도 작은 밥상에 책을 얹어 TV앞에 앉곤 했는데도 ‘TV 그만 봐라’는 말씀을 들어본 기억이 없으니 그만큼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하려니’ 믿으셨던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보는 모든 시험, 심지어 받아쓰기까지, 채점된 답안지를 받는 날 저녁이면 우리 남매들은 한 사람씩 아버지 앞에 시험지를 들고 들어가 검사를 받곤 했다. 하나라도 틀린 날에는 늘 긴장된 시간이었지만 알면서도 틀린 것은 따끔히 지적하시고 몰라서 틀린 문제는 자상히 가르쳐주신 아버지. 어릴 적 우리 삼 남매를 한 명씩 무릎에 옆으로 뉘워 귀지를 파주시던 기억. 어디 상처라도 나면 비상약통에서 빨간 약을 꺼내 발라주시고 의사셨던 할아버지께서 가져다 주신 특별한 가루약을 뿌리신 뒤 가제로 잘 싸매 호호 불어주시던 아버지의 모습.
초등학교 4학년땐가 아버지가 대학시절 쓰시던 과일 칼로 사과껍질 깎는 것을 가르쳐 주셔서 그후론 손님이 오시면 내가 과일을 깎겠다고 자청하곤 했다. 결혼하고 아이들이 세 살 무렵 한국을 가면 손자, 손녀에게 제대로 된 젓가락질을 가르치신 아버지. 우리 아이들이 외할아버지와의 많지 않은 기억 중에 생생히 꼽는 것이 젓가락질 강의이다. 식탁에 콩을 쏟아놓고 하나씩 집게 하셨다며 저희들의 바른 젓가락질을 외할아버지께 감사해 한다.
유난히 국수를 좋아하셨던 아버지의 식성을 닮아 나도 국수 마니아인데, 두 아이를 데리고 한국을 방문했던 어느 여름날 아버지와 나만 집에 있게 되어 내가 점심식사로 차려드린 특별할 것 없는 비빔국수를 함께 맛나게 먹었던 기억.
십년전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며 나는 다시 한번 그 삶의 정갈함과 소박함에 감동되었다. 옷장에 걸린 단촐한 옷가지와 잘 정돈된 책상 서랍, 소중히 다루시던 공구함, 그리고 늦게 그러나 진정으로 깨달으신 하나님 사랑으로 가득한 글들…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몇 년간, 예순이 넘은 연세에 수줍은 듯 국제 전화를 통해 내게 하셨던 길지 않은 말씀들은 곧 신앙고백이셨다.
내가 본 아버지의 눈물은 단 한 번. 결혼해 유학생 사위따라 미국으로 떠나는 맏딸을 배웅하시는 공항에서 인파 속에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던 그 눈물의 따스함으로 나는 그후의 삶의 구비구비를 넘기고 지금 이 자리에 있다.
주께서는 한쪽 문을 닫을 때 다른 창문을 열어 놓으신다 했던가. 이제 그리움의 문 앞에서 서성이던 내 마음에 감사의 창문을 열 때인가보다. 그런 아버지를 내 아버지로 허락하심을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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