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한일 월드컵이 한 두해쯤 지난 여름, 나는 나의 두아이들과 함께 한국에 다녀왔다. 몇해에 한번씩 다녀오는 친정 나들이를 겸해 남동생의 결혼식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에 갈때마다 꼭 들르는 곳, 몇번 동행했던 아이들도 당연히 가야하는곳으로 알고 있는 곳, 나의 친정 아버지가 누워 계신 빛고을 광주에 들리곤 한다. 서울에서 내려가자면 고속버스로 3시간반 거리, 비행기로 40여분 거리이지만 나와 아이들은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광주행 무궁화호를 타고 4시간 반 거리의 여행을 즐긴다.
실리콘 벨리에서 기차여행을 즐길만한 기회가 거의 없었던 아이들에게 광주행 기차여행은 그야말로 신나는 여행이 되곤 한다. 객실 통로사이로 다니는 홍익매점의 그물망의 삶은 달걀 사서 까먹는 재미도 솔솔 하지만 창밖으로 지나가는 한국의 농촌 풍경이며 논에서 모내기하는 모습이랑 가까이 왔다가 사라지는 아기자기한 야산의 모습을 짧은 시간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풍경을 즐기는 동안 기차는 어느 덧 광주역 플랫홈에 기적을 울리며 들어가고 있었다. 객지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을 따듯하게 맞아주는 어머니의 품같은 아늑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아버지 산소에 성묘를 하고 돌아오려는데 어릴적 친구들을 만났다.
먼 이국땅에서 고향을 찾아온 죽마고우를 친구들은 반가움에 나와 초등학생인었던 나의 두아이들에게 꼭 보여 주고 싶은 게 있다고 하룻밤을 붙잡았다. 다음날 친구들은 무작정 우리일행을 차에 태우고 어디론가 향했다.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 월드컵 경기장 이었다.
마침 시민을 위한 스포츠행사로 개장되어 있어 안으로 들어가보니 바닥은 광주를 상징하는 ‘빛’의 형상이 그려져 있고 관람석은 광주의 대표적 민속놀이인 ‘고싸움’형상으로 꾸며져 있었다
순간 그 날의 감동에 온몸의 전율을 느꼈다.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2002 한일 월드컵 경기 4강전티켓을 놓고 스페인과의 승부차기에서 5번째 키커로 나섰던 홍명보선수가 높은듯한 골문을 가르고 특유의 밝은 미소로 양손을 벌리고 달려나왔던 곳, 순간 하늘이 열리고 축포가 터지고 승리의 개선행진곡같은 GO-WEST곡이 화려하게 울려 퍼졌던 곳, 전세계에 흩어져 살아가는 재외동포들에게 서로가 서로를 끌어안고, 모두가 한가족이 되어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만세를 부르게 했던 곳, 그 전설같은 역사의 현장에 서있었던 그 기분을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빛고을 광주는 한국 현대민주사에서 깊은 상처와 아픔을 지닌 도시이다. 또 90년대후반에는 IMF까지 겪어 다시 일어 설 수 없을 것 같은 진한좌절과 실망을 겪었을 광주시민들에게 월드컵 4강신화는 다시 새로운 꿈을 향해 비상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으리라.
함께 겪으면 쉽게 공감하게된다.
나의 아이들은 바로 몇해전 TV를 통해 함께 느꼈던 그 감동의 장소에 와있음에 신기해 하는동안, 그날의 감격을 말해주는 <4강로>표지판과 기념비가 더 뚜렷하게 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두아이의 손을 꼭 잡았다. 우리도 꿈과 희망을 잃지 말자.우리들은 코리안이니까.
기축년 새해들어 시간이 흐를수록 주위사람들은 아직도 어두운 화제들에 더 익숙해한다. 그래도 ‘희망’을 얘기하고 ‘또 다른 꿈’을 나누었으면 좋겠다
벌써 몇해나 흘렀는데도 그 <4강로>의 감격이 오늘 또다시 내 감슴속에서 모락모락 피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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