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14년전, 첫아이를 받으러 오신 친정엄마, 산후조리가 한참 지난 어느날, 특유의 예리한 관찰력으로 하시는 말씀이 “ 너희 동네는 어느방향으로 운전하고 다니더라도 야산을 볼 수 있어 참 아늑하고 편안한 도시같구나” 그러셨다. 그렇다. 실리콘 벨리, 참 안정감있는 좋은 동네이다.
이 큼직막한 분지 안에서 새벽에 눈을 뜨면 아이들 학교로 직장으로 다시 학교로 그리고 하루일과를 무사히 잘 끝내고 잠자리에 다시 들때까지 다람쥐 쳇바퀴돌듯 하루하루를 보내고 한주일을 보내고 한해한해를 메꾸어가며 살아가고 있다.
딸아이로 태어나 철없는 소녀시절을 보내고 꿈많은 여학생시대를 거쳐 인생과 삶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어느 날, 생의 반쪽을 만나면서 새로운 꿈을 꾸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며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아내로 엄마로 주부로서의 삶을 꾸려가면서 한층 겹겹이 쌓이는 ‘관계’속에서 나만의 시간이나 꿈은 세월의 저만치 뒤로 비켜나가 있고 삶의본연에 충실하다보면 여성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버겹게 느껴질 때가 있다
지난 주말 오후, 과감히 북쪽으로 차를 몰았다. 하루쯤 일상을 벗어나고 싶었다.
가뭄이 심한 북가주의 빗줄기는 누구에게나 반가움이었지만 그 주말 오후에는 드라이브하기에 적당한 맑은 날씨로 나의 오랫만의 ‘가출(?)’을 축복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북쪽으로 약 3시간 정도 올라가다 보니 ‘위마’라는 자그마한 도시가 나왔다 . 세상이 온통 글로발 경제 위기로 근심걱정 속에 덮여있지만 그것과 전혀 상관없이 살아가고 있는 듯 밝은 표정의 시골도시였다.
예쁘장하게 꾸며진 숙소에 짐을 풀고 벌써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였지만
뒷산으로 올라갔다. 석양을 보기위해서였다. 온세상을 붉게 물들인 황혼은
말없이 자연에 순응하는 아름다움 그자체였다.
다음날 아침식사후 코끝을 상쾌하게 스치는 신선한 바람과 함께 뒷산에 올랐다.
행복한 날씨와 걷기에 적당한 트레일을 따라가다보니 만자니타 나무 숲속에 들어와 있었다.
만자니타 나무는 이곳 캘리포니아에 많이 자생하는 오크나무과에 속하는 단단한 나무이다. 이나무의 특징은 키가 과히 크지않고 비교적 나이테가 앏고 여러갈래로 자라나며 허물을 세번 벗는다고 한다. 첫번째 껍질을 벗으면 진한 초코렛색깔이 된다고 한다. 두번째 벗겨지면 붉은색이 되고 세번째 벗겨지면 그때야 비로소 크림색 비슷한 맑은색이 된다고 한다.
세코이아 팍의 레드우드 거목들을 보면 평생을 자식들과 가족들에게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주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나지만 이처럼 강단있고 자생력이 강한 나무를 바라보면 우리네 어머니들을 생각하게 된다. 더구나 이 만자니타 나무의 형상을 바라보니 우리 앞서 살아가셨던 엄마들의 가슴속이 아닐까 싶었다. 자신의 마음이 갈래갈래로 찢겨지는 고달픈 고통속에서도 가정을 위해 꿋꿋이 견뎌내셨던 어머니, 벗기고 벗겨지는 아픔속에서도 하얗게 다 타버리도록 속으로만 삭이셨던 어머니들의 가슴속 말이다.
살아가는 일이 버겁다고 떠난 길에, 지금도 나의 삶을 위해 기도하고 계실 어머니의 모습과 집에 두고온 남편과 아이들이 눈앞에 어른거렸다.여성으로서의 삶속에 맺어진 ‘관계’가 버거움이 아니라 그것때문에 세상이 살만한 것 아닌가 싶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말이다. 하루밤 가출(?)에서 돌아온 나를 이산가족 상봉하듯 반갑게 맞이해주는 남편과 아이들,나의 존재감을 물씬 느끼게 해주는 가정이 나의 살아가는 이유이고 삶의 진정한 꿈이 아닐런지.
여성으로서 나이들어갈수록 친정어머니를 더욱 그리워 하는 것 같다. 이세상에 계시든 아니 계시든지 말이다. 더구나 모두가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 견뎌내야 하는 요즘에는 어머니의 강인한 모습이 더욱더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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