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크신 은총이다. 가이없는 축복이다.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과 나눈 두 번의 만남은 새로운 삶으로의 초대다. 신앙의 신비에 젖게 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묻게 한다. 십자가 아래 머물게 하고, 십자가의 길을 걷게 한다. 고맙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
첫번째 만남은 1981년 어느 날이다. 한국일보에서다.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의 ‘사제 서품 30주년 기념대담’ 기사다. 이충우 기자는 대담기사 끝 마무리를 김 추기경께서 좋아 하시는 성(聖) 프랜시스코의 “평화를 구하는 기도”로 꾸민다.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 어두움에 빛을 /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처음 듣는 호소다. 광야의 소리다. 울림이 컸다. 세상에는 이런 기도도 있구나. ‘성(聖) 프랜시스코의 손을 잡고 새로운 세상에 던져지는 순간이던가. ‘거룩한 욕심’이 있다면 이 쯤의 집 한채는 지어야 할 텐데. 대하고 읽을 때마다 별난 흥취를 맛볼 수 있었으니...
그러던 차에 김수환 추기경께서 1982년 5월, 이곳 샌프란시스코를 찾으신다. 그리고 한 말씀을 들려 주신다. “잘 살면 그것으로 좋은 일이다. 부디 성실히 일해서 잘들 사시기 바란다.” 참으로 쉬운 말씀이다. 울림은 더욱 크다. 이민생활에 쫓기던 내 모습을 뒤돌아본다. 지칠대로 지쳐 영혼까지 팔겠구나, 파김치가 되던 나를 일깨운다. 눈을 뜬다. 깨어 난다. 뒤따라 생각이 꼬리를 문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묻고 또 묻는다. 나는 김수환 추기경님과의 두 번의 만남을 기리며 한 꼭지의 글 “평화를 구하는 기도”를 쓴다.( SF 한국일보 ‘포그-혼’ 1982년 6월11일자 참조 )
지금 와 생각해 보면 김수환 추기경님의 부름에 이끌려 ‘프랜시스코’ 성인과의 만남, 바로 그 때가 삶의 한 고비이던가? 딱 두 번 찾은 명동성당 말고는 모르고 살던 천주교인데...
사실, 예수님 이야기는 어릴 적에 들었다. 앞집에 살던 성공회 ‘이천환 신부’ 가족들과의 인연으로 성공회 어린이반에서 동방박사 이야기를 들었다. 길진경, 은명기, 김재준, 강원용 목사, 그리고 김석규 목사님과의 귀한 인연도 있다. 그러나 무릎은 꿇지 않았다. 세례 이야기만 나오면 발길을 뚝 끊었다. 혼자서이지만 그래도 성경읽기도 제법 그럴듯 했다. 믿음이 뭣인지 모르고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그냥 소설같이 읽어 대던 성경이다. 잘도 읽었다. 내가 읽고 싶은 쪽만 읽고 또 읽는다. 창세기, 출애굽기만 읽고 신약으로 그냥 뛴다. 그렇게 무식하게 설쳐댔지만 그래도 한 열번쯤 읽었을 것이다.
그 무렵 김수환 추기경님과 프랜시스코 성인과의 만남은 이루어진다. 상금을 주시기에 후하고 후한 하느님이신가. 떫고 시건방진 이 몸에도 ‘믿음의 씨앗’을 심어 주시었던가.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 온다. 성경 읽기에서도 새김질이 뒤따르고, 두 눈을 감는 나를 보게 된다. 하느님 사랑을 맛보는 순간들, 새로운 삶의 첫 발이다. 1984년 성탄전야 미사에서다.
자비로우신 하느님. 엎드려 빕니다.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을 떠나 보내는 마음을 굽어 살펴 주소서. 뜻과 생각과 말과 행위로 우리 모두의 모범이 되고 나라의 기둥으로 살다가 세상을 떠난 김수환 추기경께서 마침내 하늘 나라의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 아멘.
김수환 추기경님. 감사합니다. 제가 누구인지 이제는 아시겠지요. 김 프랜시스코 입니다.
항상 저희들과 함께하시며, 저희들을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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