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동네에 이사왔을때 때마침 일고 있던 한류열풍이 이골목에도 몰려와 있었다 골목어귀에 들어서면 우리아이들이 한국말로 인사잘한다고 늘 반갑게 칭찬해주시던 한국인 한나누나네, 일년에 한번씩 대만 친정에 다녀오면 친정엄마에게 소개받은 한국드라마 디비디를 들고와 자랑삼아 보여주던 티파니와 제스퍼 엄마, 한국인 가족이라고 유난히 반기던 월남인 티미코 엄마, 잡채만드는 법을 전수받고 싶어했던 일본인 데이비드 엄마, 틈만 나면 한자(漢字)를 들고와 한중일(韓中日)의 읽는법을 비교해보면서 신기해하던 학구적인 중국인 신디 엄마, 그렇게 작은 아시아처럼 어울려 살고 있었다.
방과후면 또래의 아이들이 숙제를 끝내고 나와 자전거도 타고 이집저집 뒷뜰로 몰려다니며 떨어진 과일도 줍고 때마침 놀러온 다람쥐를 쫒아다니며 놀곤 했었다. 음력설이 되면 아시아의 풍습을 따라 각각의 집으로 다니며 세배도 다니고 새해 덕담도 듣고 각나라의 지페로 새배돈을 주고받으며 즐겁게 지내곤 했었다.
그중에 티미코라는 아이가 있었다. 이름만 들으면 일본여자아이같지만 젠틀한 백인 아빠와 야무지고 다부진 월남엄마사이에서 태어난 귀엽고 예쁜 여자아이였다. 위로 오빠들만 있어서인지 우리 딸아이를 언니처럼 잘 따르던 티미코가 우리집에 자주 놀러오다보니 자연스레 그 엄마와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
어느 봄볕이 좋은 날 내게 마음편히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우리가족이 이골목에 입성하였을때 ‘한국인’이라는 이유하나만으로 내심 반가웠다고 했다. 이런저런 하우스 관리에 관한 정보도 나누어 주고 어려운일이 있으면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처음엔 과잉친절인가 의아했는데 그녀의 살아온 얘기를 듣고 있자니 가슴이 뭉클했다.
75년도에 월남이 월맹군에게 패망하면서 철수하는 미군을 따라 미국으로 오게 되었단다. 어느 마음씨좋은 백인 양부모님에게 입양이 되었는데 그 어릴적 살던 동네에는 한국인 한가족과 일본인 한가족만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쉽게 월남문화를 접할 수 없었던 환경이었지만, 사려깊은 양부모님의 배려로 그 동양인 두가족과 자주 어울렸다고 한다. 가끔씩 불고기며 잡채며 매콤한김치까지 푸짐하게 한상 가득히 차려주시던 한국인 엄마(?) 와 미소숩과 테리야끼 치킨을 맛있게 만들어 주시던 일본인 엄마(?)에 대한 특별한 추억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분들을 엄마라 불렀다.
한번은 어릴적에 밤새 고열로 아픈적이 있었는데 살았던 곳이 워낙 시골이라 날이 밝기전에는 병원에 갈 수 없었는데,동양인 특유의 따스한 모정으로 밤새 물수건으로 닦아주고 걱정하면서 기도해주고 간호를 해주시던 엄마들을 기억하고 있단다 그때의 그아름다운 기억때문에 늦동이로 딸아이가 태어났을때 딸아이 이름을 다소 발음하기 쉬운 티미코란 예쁜 일본식 이름을 지어주게 되었고 입맛은 매콤한 한국김치에 익숙해 있다고 했다.
월남입맛이 그리웠던 어린시절에 대신 먹었던 매콤한 맛의 향수때문에 김치담그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배추 절일때마다 내옆에 앉아 이리저리 캐묻던 생각이 난다. 막김치 한병 나누어 주면 입이 귀에 걸리게 좋아하던 그녀, 양부모의 적극적인 주선으로 30년만에 찾아오신 생모를 행복하게 내게 소개하던 그녀, 자신은 낳아주신 엄마, 키워주신 엄마, 사랑을 나눠주신 엄마들이 많아서 늘 감사하다고 말하던 그녀,티미코 엄마가 그립다.
부동산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을때 티미코네는 북쪽으로 새동지를 찾아 이사를 갔다.어린 월남여자아이에게 따스한 인정을 베풀었던 이름모를 어느 한국인 가족때문에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 가족들이 대신 받아야 했던 친절과 사랑은 과분(?)하리만치 감사한 일이었고 오래 기억하고 싶은 따뜻한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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