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흘러흘러 음악을 전공하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 노래 실력이 잼뱅이니 노래하는 자리만 갔다하면 한번씩 곤욕을 치른다. 크고 작은 모임에서 합창이나 중창을 해야 할때면 영락없이 전공했다는 이유로 나만 쳐다본다.
그러던 중 마침 음악으로 훌륭하신 잘 아는 분이 합창단을 결성했다고 참석을 권하며 연락이 왔다. 나는 이 기회에 지휘와 합창을 배울 수 있을 것을 기대하며 흔쾌히 승락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철없던 학창 시절에는 지루하기만 했던 가곡과 이태리 곡을 대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집에 왔건만 어느덧 저녁 시간이 훌쩍 넘어 버렸고 -
“엄마! 밥이 없어요. 우리 저녁 아직도 안 먹었어요.”
“당신 ,어딜 그렇게 쓸데없이 돌아다녀? 가족들 밥은 먹게 해줘야 하잖아!” 불평들이 마구 쏟아진다.
“미안해, 아들! 당신에게도.” 나는 부엌으로 직행해 서둘러 저녁식사 준비를 하다 갑자기 괜스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왜 미안해?’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두사람에게로 씩씩 거리며 갔다.
“내가 없으면 저녁 굶어요? 당신은 라면도 못끓여요? 그리고 아들! 너는 곧 대학 가는데 앞으로 네가 알아서 해먹어야 하는데 간단한 샌드위치도 못 만들어 엄마만 기다리니?”
막 쏘아 붓치니 두사람 모두 어리둥절 한다. 기회는 이때다 하고 나는 의기양양 “문화생활 좀 하려는데 그게 왜 쓸데없는 일이에요?” “ 친구만나 둘다 가끔 늦게 들어 오면서 왜 나만 꼭 밥하고
기다려야 돼? 그리고 아들! 엄마라고 볼일 좀 보면 안되니?
“엄마는… 그래서 엄마 잖아요….” 아들이 말끝을 흐린다. 엄마는 늘 집에서 당연 자기들을 위해 희생하는 존재라고만 인식된 아들의 ‘그래서 엄마 잖아요.’ 라는 말로 인해 이번에 제대로 생각을 바꿔줘야 겠다고 내심 작은 반란이 일어났다.
내가 참석하는 글쓰기 모임은 대부분 노인분들 이신데 생각지 못한 신선함을 느꼈다. 그 정도 연세에는 대부분 한국 드라마로 거의 시간을 보내거나 자식 키우느라 한평생을 보낸것도 모자라 또 손주를 돌보시며
지내는게 대부분일텐데 시간 쪼게 모임에 나와 시와 수필로 깊은 감동을 함께 나누며 이런 저런 행사 계획을 나눈다. 또 어느 분은 가족을 위해서가 아닌 본인 일로 어찌 바쁜지 이기적인 그 모습이 내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또 매번 합창 연습시간도 갖고 가곡과 흘러간 노래도 불러가며 우수에도 젖는 모습들은 아이처럼 해맑고 천연스럽다.
그러다 누군가 생신을 맞으면 연습한 곡을 다같이 부르는 그 모습이 어찌나 행복해 보이는지 - 이들 합창을 이끌어 가는 나는 부족하지만 참으로 보람된다.
산 중턱에 고개를 내밀며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도 아름답지만 형언할 수 없는 깊은 빛깔을 내는 노을은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바삐 지내온 아내와 엄마인 내가 잠시 비운 그 자리- 이제야 문득 나의 모습을 본다. 이젠 영락없는 아줌마가 되어 늘어나는 것은 허리 둘레와 수다, 그리고 음식과 요술 쟁이 처럼 쪼개 쓰는 살림솜씨로 불현듯
내가 꿈꾸는 도전적, 창조적 삶이 저만치서 내게 손짓하며 작은 설레임으로 요동쳤다. 부쩍 커버린 자녀들이 가족들 뒷바라지만 해온 작은 내 모습을 보며 과연 무엇을 느끼고 또 나는 어떻게 변할까.
우울한 갱년기를 맞기전에 나만의 목소리, 조금은 얄미운 이기적인 아내가 되어 나를 위해 바빠보자. 이제 허리 둘레가 아닌 창조적인 머리 둘레를 키우기 위해 도서관도 열심히 가야겠다. 가끔은 콩나물 하나 덜사고 아름다운 시집도 사고 예쁜 옷도 사입고 커피샾에 홀로 앉아 그윽한 향기에 취해 폼잡고 중년의 고독도 씹어보고 싶다. 또 친구와 노래방에서 실컷 노래도 불러보고 싶다.
내 가정을 위해서 나는 계속 글쓰기 모임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며 행복할 것이고 글을 쓰며 사는 의미를 느낄것이며 합창단에 참석해서 열심히 가곡도 부를 것이며 창조적인 아내와 엄마가 되도록 바쁘게 살아갈 것이다.
가끔은 이기적인 여자로 집에는 늦게 오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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