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지만, 아무리 땅을 많이 사도 배가 안 아파지는 친구가 내겐 한명이 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내가 지방에서 살다가 서울로 전학을 와서 적응도 안 되고 겉돌 던 시절이었다. 한 한달 정도 혼자 겉돌 무렵 이 친구가 친근하게 먼저 아는 척을 해왔다. 뭐랄까? 우울했던 하늘이 싹 개이고 빛이 비치는 느낌이 들었다. 그 때부터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고등학교를 달리 배정받아서 중학교 졸업 후엔 같은 학교를 다닌 적이 없지만 늘 만나고 편지하고 전화를 했다. 친구는 내가 전학 왔던 첫 날을 나보다 잘 기억해서 곧 잘 내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웠는지 늘 놀리곤 했다. 잔뜩 긴장해서는 군인처럼 자기소개를 했다면서… 그리고 내가 기억 못하는 나의 옛 모습들을 나보다도 잘 기억해 주었다.
우리는 친구로 지내면서 서로의 20대를 보았다. 크고 작은 실패들과 소소한 연애사의 마무리는 늘 함께 나누곤 했다. 우린 함께 여러 곳을 여행 다녔고, 서로에게 소개팅을 시켜줬으며, 결혼식 야회촬영을 지켜봐 줬다. 그 친구 말고도 친구들은 많았다. 하지만 결혼하고 미국으로 떠나오면서 이래저래 소원해지고 대부분 연락도 점점 끊어져 갔다. 하지만 이 친구하고는 시간이 흐를수록 친구라는 사실이 애틋해졌었다.
30대도 넘기고 애들도 생기고 우리가 서로 모르던 날들보다 친구로 살아온 햇수가 많아져서 더 좋았던 내 친구가. . .요즘 많이 아프다. 처음엔 자신의 병명을 말해주던 친구의 목소리가 너무 덤덤해서 중병임에도 내 마음을 안심시켰었다. 수술을 하고 재발이 여러 번 계속 되는 동안 전화 속 친구의 목소리는 점점 더 힘들어져 갔다. 친구는 이제 희망에 대해 얘기 하지 않고, 나도 섣불리 희망에 대해 입에 담지 않는 순간이 되었다.
며칠 전에 어느 사진작가의 사진첩을 보았다. 작가가 찍어 놓은 노인 분들의 영정사진이 여러 장 있었다. 그 중에 평생을 친구로 지내온 할머니 두 분이 서로를 마주보며 함께 웃는 스냅 사진 한 장이 끼어있었다. 그 사진 한 장을 한참동안 쳐다보았다. 우리에게도 그런 시간이 올 거라고… 서로의 꿈을 이야기 하던 소녀들이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를 늘어놓듯이 언젠가 손주들 이야기를 할 때가 당연히 올 거라고 생각했었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끝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 건지, 남아 있는 시간이 평안하기를 기도해야하는 지… 누구에게나 때가 있다. 그러나 그 때를 알 거나 결정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다만 기다릴 뿐이다. 기다리는 내 친구나 나의 모습이 후회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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