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이 조용하다. 두아이들이 지난 한주일동안 각각 오버나잇캠프를 떠났기 때문이다 우리부부만 남은 집안은 오랫만에 여유가 감돌아 좋았다. 딱 하루만 그런 분위기였다.이틀,사흘째가 되면서 뭔가 해야 할일이 생각나지 않는 것처럼 괜시리 마음이 종종걸음이다.이것저것 아이들을 채근하던 일과와 아웅다웅 거리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슬슬 생각나기 시작하고, 이제 아이들방 문만 열어봐도 눈물이 울컥해져 허탈감마저 들려고 한다.
아이에서 어른의 세계로 옮겨져 가고있는 십대의 우리집 두남매, 이또래는 싸우고 다투면서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법을 배워나가는 시기인 것 같다. 아이들에게 서로 형제라는 것 그리고 서로다른 이성이라는것을 이해시켜서 비온뒤에 땅이 굳는 것처럼 서로 아웅다웅 잘 싸울 수있도록 지켜보는 것도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차한잔을 앞에 두고 남편의 눈치를 살펴보니 슬슬 아이들이 보고 싶은가 보다 . 때아니게 아이들 어릴적 이야기를 꺼내는 걸 보니 말이다. 첫딸을 낳아 조금은 긴장하고 어설프게 시행착오를 많이 겪으면서 부모노릇을 배우느라 진땀 뺏던 추억들, 두살 터울인 둘째아이를 키우면서 차츰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었던 기분좋은 추억들이 지금 잠시 우리곁을 떠나간 아이들의 빈자리를 메꾸고 있다.
우리부부는 선물로 주어진 아이들에게, 이민가족의 부모로서 꼭 전수하고픈 한국인으로서의 몇가지 삶의 원칙들이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아이들 유전인자속에 잠재되어 있는 ‘한국인의 정신’ 하나쯤은 끄집어 내어 아이들 스스로 그걸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둘째아이가 막 태어났을때부터 영어로 ‘SISTER’말고 한국말로 지누나를 ‘누나’로 알아듣고 말할 수있도록 의도적으로 주입시켰다. 그래서인지 어디에서든지 절대로 작은 아이는 지 누나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가 하는말이 학교에서 작은아이가 한국말로 ‘누나’하고 부르니까 작은아이친구들도 저더러 똑같은 한국말로 ‘누나,누나’하면서 ‘Is 누나your nickname?’ 하고 묻더란다.
한국의 소식을 들어보면 한국의 각대학에 소재한 어학당에 교포2세가 대부분이었던 예전과는 달리 이제는 전세계각국에서 ‘한국’을 배우기 위해 몰려오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한국말과글은 물론이고 현세적인 한국문화뿐만 아니라 전통문화에도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어떤 외국인은 어지간한 한국본토인들보다도 더 한국적인외국인도 있다 하니 이런시점에서 보면 우리아이들이 단순히 한국어를 공부하는 것만으로 ‘한국인’이라고 내세우기에는 부족한 면이 없지 않은가 싶다. 우리 아이들이 어릴때는 막연히 한국말과글은 당연히 가르쳐야지 했지만 어느날부터인가 그 어느민족도 흉내낼 수없는 우리 한국인만의 ‘그 무엇인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해보게 되었다.
어린시절에 이민왔지만 뼈속깊이 한국인의 유교적인 정서를 소유하고 있는 남편과 나역시도 전통적인 가족관에 익숙한 분위기에서 자란 터라 조금은 고지식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장유유서의 사상에서 비롯된 가족에서의 위계질서는 확실히 아이들에게 심어 주고 싶다는 데 의기투합하고 일찌감치 어릴때부터 아이들에게 주지 시켜 왔다.그렇다고 아랫사람이 무조건 윗사람에게 의존하는것은 아니지만 가족내에서의 각자 맡은 역할에 대한 책임과 권위를 소유하게 되어 조금은 싹수있는 한국아이들로 자라나지 않을까하는 작은 바램때문이었다. 자유스럽고 진보적인 글로벌 시대에 살아가야 할 아이들이지만 그래도 한국인의 후손으로서 꼭 지켜내야 할 어떤것들이 있다면 그것들이 아이들의 삶속에서 제대로 잘 이어져 갈 수있도록 지향되어야 하지 않을까.
내일이면 아이들이 서로에게 나누어 줄 조그마한 선물하나씩 주워 들고 올텐데 벌써부터 아이들이 그립다. 이번에 돌아오면 서로를 좀더 이해하고 한동안은 덜 싸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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