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야의 악령’(Goya’s Ghost)은 스페인 화가 고야의 일생을 주제로 한 픽션이다. 그러나 여기 나오는 사건 중 상당 부분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 중 눈길을 끄는 것 중의 하나는 스페인 교회가 주도한 종교 재판이다. 이들은 이단을 뿌리 뽑기 위해 무자비한 고문을 자행했다. 영화에서는 고야의 모델로 조상이 유대인이었던 여성이 식당에서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대교도로 몰린다. 유대인 율법은 돼지고기 먹는 것을 금하고 있다.
이 여성이 단지 돼지고기가 싫어서 안 먹었을 뿐이라고 항변하자 조사관들은 테스트를 받을 용의가 있느냐고 묻는다. 기꺼이 그러겠다고 답하자 이들은 이 여성을 발가벗겨 손을 뒤로 묶은 채 천장에 매단다. 고통에 못이긴 이 여성은 모든 것을 자백하게 되고 그 결과 십여 년을 지하 감옥에서 썩으며 폐인이 된다. 이 여성은 나폴레옹 군대가 스페인을 침공, 종교 재판소를 폐지한 후에야 석방된다.
‘질문’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고문 기법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허위 자백을 했으며 그로 인해 감옥에서 쓰러져 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영화에는 이 여성의 아버지가 성직자를 잡아다 똑같은 고문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처음 교회 조사 방식의 정당성을 주장하던 성직자는 자신이 당하자 “나는 원숭이의 아들”이라는 자백서에 서명을 하고 만다. ‘매에 장사 없다’는 말은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스페인 종교 재판소가 사용한 고문 기법은 ‘질문’만이 아니다. 한국 남영동 대공 수사 분실에서도 한 때 자주 사용되던 물고문 기법을 고도의 경지로 개발한 것도 이들이다. 이는 나중에 중국 공산당들이 배워 한국전에서 잡힌 미군을 고문할 때 이용했다.
그전까지 ‘제네바 협약’에 의해 금지돼 있다는 이유로 불법화 돼 있던 이 기법은 9/11 사태 이후 ‘테러 용의자는 전쟁 당사국의 일원이라 볼 수 없다’는 주장에 따라 부활됐다. 이 주장의 이론적 근거를 마련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 부시 행정부에서 법무부 차관보로 일했던 한인 2세 존 유 UC 버클리 교수다.
현재 오렌지카운티 챕먼대 객원교수로 내려와 있는 그는 지금도 자신의 주장의 정당성을 굽히지 않고 있다. 알 카에다 같이 국적이 불분명하고 미국에 대한 광적인 증오로 무장된 단체 조직원으로부터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어느 정도 강제적인 수단은 불가피하다고 그는 말한다. 9/11 이후 지금까지 미국에서 다시 테러 사건이 재발하지 않은 것은 바로 그 덕이라는 것이다. 테러 조직에 대한 정보의 50%는 고문으로 얻어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얘기다.
일부 인권단체들은 그를 전범으로 기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한 스페인 판검사들은 그를 기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버드와 예일을 나온 한인 수재가 고문과 관련돼 지탄을 받고 있는 것은 유감스럽다. 그러나 9/11 참사 이후 테러 재발을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한다는 압력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알 카에다 조직원들에게까지 신사적인 방법으로 취조를 해 필요한 정보를 신속히 얻어낼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테러리스트 고문과 관련된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