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고 교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던 나는 직장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같이 일을 시작한 신입교사들과의 관계도 잘 맺어야 하고 부장교사, 교감, 교장의 윗분들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립학교의 특이한 운영진으로 타부서장, 부원장, 원장의 층층시하에서 나의 위치와 일을 제대로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난 거기서 참 좋은 동료이며 스승인 선배교사를 만났다. 내가 풀어가야 하는 일들을 하나씩 잘 가르쳐 주었고 나에게 올바른 교사상의 모델이 되어주었다.
교사로서 일을 하는 것은 어려웠던만큼 너무도 행복한 일이었다. 통근버스에서 내려 학교를 향할 때면 빨리 가서 학생들에게 뭔가 가르쳐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늘 가슴이 뛰었고 장애로 빨리 걸을 수 없었던 나는 너무도 느린 내 다리가 답답하게 느껴지곤 했었다. 학생들이 귀하게 여겨진만큼 학교도 사랑스러웠다. 그러다보니 학교주변에 떨어진 휴지하나도 그냥 지나치질 않고 모두 주우며 나녔다.
물론 바로 사회에 나와 만난 그 모델교사로부터 배운 일이었고 그것이 올바른 교사상이라 배웠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교사들과는 달리 화장도 안 하고 옷도 편한 티셔츠를 즐겨 입고 다니던 나는 가끔 학교를 찾는 부모나 손님들에게는 새로 온 청소부로 먼저 알려졌었다.
교무실에서 환히 보이는 교정을 바라보면서 휴지조각 한장 없이 깨끗한 모습을 볼 때 마음이 흐뭇한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다. 봄볕이 따사로이 감돌지만 아직 봄시샘이 있어 교정의 나무들은 아직도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그대로 겨울을 겨우 벗어나고 있는 중이었는데 아니 어느 누가 감히 코를 풀어 구긴 티슈를 던져 그 앙상한 나무가지에 걸어놓은 것이 아닌가?
조용한 교무실에서 책상에 머리를 박고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교사들에게 학생들이 저질러 놓은 비행을 격양된 목소리로 선동하자 “어디 어디?”하며 여러 명이 창가로 달려왔다. 휴지가 어디에 있느냐며 내눈엔 뻔히 보이는 그 휴지조각들을 못보는 태도들이었다. 한참을 여기 저기 설명을 하며 손가락으로 가리켜 학생들의 비행을 폭로했다.
늘 조용하고 물이 오른 듯한 촉촉한 정서적 언어로 자기관리를 해 온 국어교사가 잔잔한 듯 비웃는 듯한 어조로 “목련이요?”하며 어이없어 하는 것이 아닌가? 목련? 꼭 들어보지 못한 단어는 아닌데 생전 처음 보는 이 느낌은 무엇인가? 그 나무는 늘 곁에 있었지만 내가 못본 것이었다. 그리고 보니 ‘목련화’라는 가곡도 있었고 그렇게 아름답다고 칭송이 자자한 꽃이 어찌 내 눈에는 휴지조각이 널린 것으로 보였을까? 다른 사람들은 목련과 쓰레기를 구분할 수 있었는데 나는 그 아름다움을 조차 알아보지 못하고 흥분을 했던 나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난 너무 틀에 박힌 생각과 목표지향적인 열정으로 성취한 목표에 대한 자축만 알 뿐 그동안 일의 주체가 되는 사람들과 일을 하는 과정의 즐거움은 모르고 달려가는 중이었던 것이다.
그 이후 목련화는 나에게 삶 속에서 일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늘 생각하게 하는 촉매제가 되었다. 미국에서는 목련화를 볼 기회가 별로 없는데 다행히 여기엔 사오월에 만발하는 보랏빛의 환상적인 꽃을 피우는 자카란타와 캘리포니아의 봄을 알리는 양귀비과의 야생화(poppy seed flower)가 메마른 정서를 일깨우는 역할을 해준다. 랭캐스터에서 서쪽으로 15마일정도 떨어진 곳에 이 꽃으로 만발한 공원이 있다.
(http://www.parks.ca.gov). 이 웹사이트에 들어가 poppy seed flower를 검색하면 첫번째로 그 장소에 대한 소개가 뜬다. 모든 것이 소생하는 이 봄에 잠깐의 여유를 내어 아이들과 가봄직도 하다. 아이들에게 그동안 공부하라고만 강조했던 생활에 숨을 불어넣는 역할로 최고일 것같다.
김효선 교수 <칼스테이트 LA 특수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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