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지역에 살 때는 몰랐는데 겨울에 눈이 많이 오는 산간지방에 살게 된 다음부터 봄이 오는 기운이 더 잘 느껴진다.
겨울 내내 쌓였던 눈이 하루가 다르게 사라지고, 눈 녹은 물로 강의 수량이 부쩍 늘어나고, 수선화나 히야신스같은 구근초 꽃들이 마당에 피어나면 정말 봄이 왔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작년 가을, 난방을 위해 쌓아둔 장작들이 바닥을 드러냈을 때 기나긴 겨울이 끝났다는 실감을 했다.
남편이 어제 낚시 시즌이 시작하자마자 새벽같이 달려가 동네 강가에서 송어 한 마리를 잡아왔다. 아이들은 아침잠을 겨우 깨서 부스스한 눈으로 아빠가 낚아온 고기를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이제 곧 아빠를 따라 낚시하러 다닌다고 아이들 얼굴이 까맣게 탈태고 튤립이 피고 라일락이 만개하다 지면 봄이 끝날 것이다. 봄이 가는 건 꽃피는 것처럼 언제 질까 늘 조마조마하게 안타까운 맛이 있다.
한국에서는 봄이 오는 걸 개나리, 진달래, 쑥, 냉이로 다 알아버린다. 저녁상에 냉이 된장국이 올라오고, 노랗고 붉게 봄꽃들이 피어나면 누구나가 인정해버린 봄이 와 있었다. 그런데 그런 봄이 온 줄도 모르고 겨울 잠바를 걸치고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땅만 보고 걸어 다녔던 적이 있다. 걷다가 골목 모퉁이에서 우연히 고개를 들었는데 남의 집 담장에 노란 개나리가 피어있는 걸 봤다. 그게 언제 그 자리에서 피어났을 까 놀라서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힘든 겨울을 지냈던 것 같다. 그래서 봄이 오는 줄도 모르고 마음속에 잔뜩 겨울 같은 바람만 담고 살았는데 노랗게 핀 개나리를 보자, 냉랭했던 마음 한 켠이 눈물처럼 녹아내렸다. ‘올해도 어김없이 피어주었구나,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구나.’ 그런 감동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노란 개나리 꽃잎이 위로를 받으며 또 어려운 한철을 넘어갔었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피고 지는 꽃들처럼, 올해도 잊지 않고 찾아준 봄처럼 묵묵히 때에 맞게 사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울 때 울고, 웃을 때 웃고, 사랑해야 할 때 사랑하고, 위로할 때와 위로 받을 때를 알고, 떠날 때와 돌아올 때를 알고, 필 때를 알고 질 때도 너무 서운해 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봄이 와서 나처럼 위로받고 행복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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