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탄생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 등장하는 산티아고는 남의 눈치를 살피지 않는 사람이다. 84일 동안 한 마리 고기도 잡지 못한다고 놀리는 주변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85일 째 다시 바다로 나간 노인은 대어를 낚지만 돌아오는 길에 상어를 만나 사투를 벌인다. 잡은 생선을 상어에게 넘겨주면 모든 것이 순조로울 터인데 굳이 사투를 벌인 이유는 대어를 낚았다고 남들에게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원하는 고기잡이에 심혈을 기울인 것뿐이다.
1921년 ‘개벽’지에 발표된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에는 산티아고와 정반대 속성을 가진 인물이 등장한다. 결혼 하자마자 일본으로 유학간 남편, 그를 기다리는 부인은 자조정신과는 철저하게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부인은 남편만 돌아오면 잘 살 수 있다고 타인 의존증에 걸린 사람이고,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내가 술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 땅이 술 마시게 한다”는 핑계를 앞세우고 술독에 빠져있는 남편은 외부영향에 좌지우지되는 사람이다.
헤밍웨이는 주체정신이 강한 개인을 노래했고, 현진건은 주변 눈치만 살피는 인간을 묘사했다. 무엇에든, 구심점이나 무게중심이 없어지고 다극화, 다양화를 추구하며 입맛대로 사는 시대가 도래했고, 테이스터 초이스가 유일하게 ‘귀에 익은’ 커피 브랜드로 알려진 시기가 이미 오래전에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학생과 부모가 적지 않다.
“주위 친구나 친척들이 들어보지 못한 대학에 진학하게 되어서 체면이 안 선다”라는 학생이 있었다. “다수는 반드시 옳은가. 그들은 나의 적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그 대학의 이름도 못 들어 본 사람이 가진 무지의 깊이와 넓이는 어느 정도인지”를 가름하기 전에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는 걱정부터 앞세운다. 또한, 유대인 교육이 자녀를 똑똑하게 키운다, 핀란드 교육이 효율적이다, 어떤 부모가 여차여차하여 명문대에 자녀를 보냈다는 기사와 책들에 눈과 귀를 집중 시킨다.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남들이 살 빼기에 성공한 방법과 경험은 나에게도 적용되겠지”라는 계산착오에서 온다. 자신에게 맞는 방법은 자신 속에 숨겨져 있다는 진리를 제쳐놓고 남 흉내내기에 급급한 것은 바로 자신의 개인됨을 거부하는 것이다.
개인됨의 거부는 우리 피부 속에 너무 깊이 자리잡고 있다. 한 예로, 주물럭 구이를 시켜 다같이 식사하는 과정의 마지막에 불판 위에 고기 한 점이 남으면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 누가 집어야 하나. 하나같이 망설이며 서로 가져가라고 권유한다. 무엇이 모두로 하여금 선뜻 마지막 한 점을 해치우지 못하게 할까. 그것을 집는 순간, 한국인의 마음속에는, ‘나’라는 개인이 노출되고 얌체 같은 인간으로 낙인 찍히는 죄책감이 아닌가. 결국, 남을 의식하고 눈치 것 하는 행동이 몸에 익어야 한다.
한인 사회는 남의 주목과 감시를 받고 있는 ‘눈치 권하는 사회’다. 특히, 대학진학을 앞둔 자녀를 가진 부모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이 사회에 필요한 것은 배를 뒤집는 파도와 노인의 대어를 갉아먹은 상어요, 외로운 싸움을 하는 산티아고의 신념을 가진 개인이다. 진정한 개인의 탄생을 위해서는 이 칼럼마저도 읽고 빨리 잊어야 한다. 남의 생각을 읽는다는 것은 자칫하면 상어에게 갉아 먹혀 뼈만 앙상하게 남은 대어처럼 나의 생각을 텅 비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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