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과 샤일록
필자는 육군졸병 시절 상관에게 경례할 때마다 “솔선!”이라고 외쳤다. 상관은 작은 소리로 “수범!”이라며 답례했다. ‘솔선수범’은 당시 헌병대의 구호였다.
헌병대엔 다른 부대에 없는 시설이 있다. 영창이다. 대부분 탈영병들이 수감돼 있다. 심심한 간수헌병이 “솔선!”하고 외치면 수감자들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수범!”이라고 고함지르며 일제히 쇠창살에 매달렸다. 늦게 일어나 매달리지 못한 수감자는 ‘빳다’를 늘씬 맞았다. 철창에 매달려 버둥대다가 힘이 달려 떨어져도 마찬가지였다.
지난주 그 영창을 떠올리게 하는 기사가 있었다. 이라크 파병을 공개적으로 거부한 에렌 와타다 중위가 끝내 ‘탈영죄’를 면했다는 내용이다. 1심에서 평결불일치(재판무효)로 풀려난 와타다의 2차 재판을 연방 법무부가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포기키로 결정했다. 40여년전 한국이었다면 필자는 틀림없이 와타다를 영창에서 만났을 터였다.
왠지 찜찜한 와타다의 재판결과를 보며 필자는 불후의 명 판례들이 생각났다.
첫번째는 솔로몬의 재판이다. 자다가 자기 아기를 깔아뭉개 죽인 여인이 한 방에서 잔 여인의 아기를 제 아기라고 우기며 소송을 냈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칼로 아기를 반쪽 내 두 여인에게 한쪽씩 나눠주라고 명령했다. 한쪽 여인이 명 판결이라며 좋아한 반면 다른 여인은 아기를 죽이지 말고 상대방 여인에게 주라며 대성통곡했다. 솔로몬은 우는 여인이 진짜 엄마라며 그녀에게 아기를 돌려주고 희희낙락하는 가짜엄마를 엄벌하도록 판결했다.
두번째는 섹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냉혈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의 재판이다. 자기를 업신여긴 상인 안토니오가 장가가는 친구를 위해 꿔간 돈을 기한 내에 갚지 못하자 샤일록은 당초 약정한대로 안토니오의 가슴살을 한 파운드 도려내겠다고 우긴다. 안토니오가 꼼짝없이 죽게 된 상황에서 젊은 판사는 샤일록에게 “약정서에는 살만 떼 내도록 돼 있다. 만약 피를 단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살인죄로 전 재산을 몰수하겠다”고 선고한다. 감쪽같이 위장한 친구의 신부였던 그 판사는 샤일록이 안토니오에게 꿔준 원금까지 몰수했다.
세번째는 ‘라구아디아 재판’이다. 1930~40년대 뉴욕의 3선 시장이었던 F. H. 라구아디아(뉴욕 라구아디아 국제공항은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는 가끔 즉결재판을 주재했다. 한번은 굶주린 가족을 위해 빵을 훔친 노인이 붙잡혀 왔다. 라구아디아는 그에게 10 달러의 벌금을 선고한 후 “그 벌금은 시장인 내가 대신 낸다. 방청객들도 뉴욕시민으로서 이런 불쌍한 사람을 돕지 않은 데 대한 벌금으로 50센트씩 내라”고 판결하고 피고의 모자를 방청객들에게 돌렸다. 노인은 벌금은커녕 되레 47달러50센트를 받아들고 법정 문을 나서며 울먹였다.
한국은 요즘 역사상 세 번째로 전직 대통령이 법정에 설지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다. 청백리의 표상 같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무지막지하게(?) 돈을 긁어모았던 전두환·노태우 두 전 대통령과 다를 게 없음이 밝혀졌다. 본인이 스스로 실토했다. 부인 권양숙 여사까지 검은 돈 때문에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으니 전·노보다 상황이 더 고약하다.
노 전 대통령이 수뢰죄로 기소된다면 솔로몬이나 라구아디아 같은 명 판결이 나올 수 있을까? 그러기 전에 변호사 출신인 본인이 와타다 중위처럼 찜찜한 법논리를 늘어놓는 대신 솔선수범의 정신으로 모든 혐의점을 밝힌 후 국민들에게 사과하는 게 좋다. 영창에 가는 전직 대통령이 세 명 째 나오는 것은 국가의 이미지는 물론 국민정서에 해롭다.
윤여춘(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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