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의 로체(8,516m) 남벽은 말 그대로 난공불락이다. 73년 일본 등정대가 첫 시도를 한 이후 20여개 팀이 정상을 밟으려 했지만 아직 명확한 등정으로 인정받는 팀이 없다. 90년 봄 유고의 토모체센이, 그 해 가을 러시아팀이 등정을 주장했으나 자료 미비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세계 14좌 중 로체 남벽이 에베레스트 남벽, 안나푸르나 남벽과 함께 가장 오르기 힘들다는 3대 코스에 들어간 이유다.
“6,000미터 지점부터 정상까지는 깎아지른 절벽입니다. 오를수록 더욱 어려워지지요. 그러나 2년 전부터 직접 정찰을 하고 필요한 모든 정보를 얻으며 구체적으로 준비해왔습니다.”
오는 28일 대원 15명을 이끌고 로체 남벽 등정을 위해 떠나는 워싱턴 산악인 김남일 대장(서울산악조난구조대)이 이처럼 자신감을 보이는 것은 그동안 준비도 착실히 했지만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뭉쳐 있는 팀원들의 사기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10명 중 3명만 부정적인 말을 해도 포기하려 했는데 대부분 해보자고 했다.
고민은 기술적인 것 보다 오히려 자금이다. 모두 6억원은 필요한데 경비 마련이 쉽지 않았다. 국고 지원이라야 공무원에 준하는 비행기표와 체재비 정도.
캠프 2에서 캠프 3에 이르는 7,000-7,600미터 지점이 고비로 낙석, 낙빙, 눈사태를 각오해야 한다. 이런 것들을 피하자면 결빙이 돼서 위험이 적은 밤을 택할 수 밖에 없다. 이 때부터 낮과 밤이 바뀐 등정이 된다. 대원 모두 정상을 밟고 싶어 하지만 아무나 갈 수는 없다. 팀 공헌도, 체력, 적응력 등을 검토해 김 대장이 외로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
김 대장은 1986년 진짜 산에 눈을 떴다. 취미나 유희 수준을 넘어서게 된 것이다. 대학 산악 동아리 출신인 부인 신연수 씨는 그러나 산사나이가 돼버린 남편 때문에 결혼 20년간 가슴앓이를 하지 않은 날이 없다.
목표가 뭐냐는 어리석은 질문에 “지금은 로체 남벽 등정이지요”라는 당연한 대답이 돌아왔다. 99년 이봉재팀, 2004년 봄 영호남 합동팀, 2006년 이충직팀이 도전했으나 성과가 없었다. 한국 산악인들에게는 비운의 산인 셈이다. 빚을 갚아야 하고 한국을 산악 강국의 반열에 올려놓아야 하는 책임이 이번 등정에 따른다.
“한국은 14좌를 모두 오른 산악인을 세 명이나 배출하고 있지만 이에 걸맞는 대우를 국제사회에서 못받고 있습니다. 그저 정상정복에 목표를 두는 ‘등정주의’에 치중한 탓입니다. 어떤 루트를 택했느냐를 따지는 ‘등로주의’가 돼야 진짜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다행히 현재 한국의 30-40대 산악인들이 새로운 길을 개척하자며 패기 넘치게 활동하고 있어 희망이 보인다. 이들은 선배들이 상상도 못할 업적을 이뤄낼 것으로 김 대장은 기대하고 있다. 얼마 전 박영석 씨가 에베레스트를 남벽을 통해 오른 것은 그 중 하나로 평가된다.
김 대장은 “2,000만이 등산을 위해 무장된 나라는 전세계에 아마 없을 것”이라며 “일반인도 즐겁고, 재밌고, 안전한 등산을 통해 건강을 찾고 삶을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대장은 재미대한산악연맹 버지니아지부(지부장 최연묵)가 주최한 스키교실 강사로도 활동한 바 있으며 미국에 오면서 잠시 등산을 멀리 했던 부인 신 씨도 오는 15일부터 재미대한산악연맹 버지니아지부가 실시하는 청소년 등산교실 강사로 나설 예정이다.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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