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 자택 대문에는 ‘김대중’ ‘이희호’라고 쓰인 문패가 나란히 걸려 있다. 김 전대통령의 여사에 대한 평생 동지로서의 배려다.
유복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이 여사는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하고 당시에는 드물게 미국에서 유학까지 한 엘리트 여성운동가였다. 이 여사가 2년 연하의 김 전 대통령과 처음 만난 것은 1951년 피란지 부산에서였다. 당시 전쟁 통에 지인의 소개로 몇 차례 대면했던 이 여사는 10년 뒤 첫 부인과 사별한 김 전 대통령을 우연히 다시 만나 1962년 운명적인 결혼에 이르게 된다.
이 여사는 스스로 ‘꿈이 큰 남자의 밑거름이 되자고 결심하고 선택한 결혼’이라고 밝혔듯, 김 전 대통령이 옥고를 치를 때는 옥바라지로, 미국 망명 때는 후견인으로, 가택연금 때는 동지로, 야당 총재시절에는 조언자로 정치 역정을 함께 했다.
특히 청와대의 안주인이 된 뒤에는 여성과 아동 인권신장에 힘썼다. 당시 여성부가 신설되고 여성의 공직 진출이 확대되자 ‘국민의 정부 여성정책 뒤에는 이희호가 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과 노벨평화상 수상 등 김 전 대통령이 누린 감격의 순간에도 함께 했다. 이 여사가 기억하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다.
이제 김 전 대통령과 길고 험난했던 ‘동행’을 마감한 이 여사는 먼저 떠난 남편을 그리면서 손자들의 재롱에 즐거워하는 평범한 노인의 삶을 이어가게 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18일 오후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서 이희호 여사가 조문 온 권양숙 여사의 손을 맞잡고 오열하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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