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월 실종소식 전해진 직후 미 정부에 진상파악 협조요청
본보, 미 국무부로부터 당시 내용담긴 문서 입수
당시 박정희 정부, 김형욱의 비정상적 미국출국 경위 추긍
한국 박정희 정부가 1979년 10월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KCIA) 부장의 프랑스 파리 실종 소식이 국내외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곧바로 미국 정부에 진상 파악 협조를 요청한 사실이 미 국무부 비밀해제 문서에서 드러났다.
뉴욕 한국일보가 ‘정보자유법’(FOIA)을 빌어 1일 미 국무부로부터 입수한 이 문서는 미 국무부가 1979년 10월18일 오후 9시41분(워싱턴 D.C. 시간) 주한미대사관에 보낸 ‘긴급’(priority) 전보로 당시 데이비드 블레이크모어 미 국무부 동아시아국 한국과장 대행이 리차드 홀브루크 동아시아국장에게 제출한 ‘한국-주간 현황 보고서’(Weekly Status Report - Korea) 내용을 담고 있다.
문서는 블레이크모어가 ‘실종된 김 KCIA 국장’(Missing KCIA Director Kim)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정부가 우리에게 ‘코리아게이트 카나리아’(Koreagate Canary)로 유명해진 김형욱 전 KCIA 국장의 10월7일 파리 실종과 관련 우리가 혹시 갖고 있는 무엇이든 정보에 대해 요청해 왔다”고 홀브루크에게 보고한 사실을 밝히고 있다.이는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김형욱 실종 사건’에 대한 내막을 실제로 모르고 있었을 가능성을 뒷받침 하는 자료로 풀이될 수 있어 주목된다. 이유는 당시 한국 정부가 김 전 부장 실종 사건과 같이 민감한 사항에 대한 협조 요청을 미국 정부에게 했다는 것은 박 대통령의 지시, 또는 결재에 따라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따라서 만일에 박 대통령이 김 전 부장 실종 사건에 자신이 직접 개입했거나 자신의 부하, 또
는 정부 기관이 개입된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그가 정보력이 막강한 미국에 이 같이 “위험한” 요청을 했을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이 문서는 특히 블레이크모어가 “우리는 이 문제(김 전 부장 실종 사건)에 있어 무엇이든 미국정부의 개입에 대해 ‘조심하고’(being cautious) 있다”고 보고한 내용을 담고 있어 당시 국무부가 김 전 부장 실종 사건과 관련 만일 미국 정부가 그 어떠한 형태로서도 개입됐다는 사실이 드러날 경우 난처한 입장에 처해질 수 있음을 감안해 한국 정부의 요청을 매우 신중하게 취급했음을 보여주고 있어 문제의 민감성을 확인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서는 한국 경향신문이 1979년 10월16일자(한국 시간) 신문에 처음으로 김 전 부장 실종 소식을 보도한데 이어 10월18일(미국 시간) 워싱턴포스트와 뉴욕데일리뉴스, 워싱턴스타 등 미국 주요 신문이 관련 기사를 보도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볼 때 한국 정부가 김 전 부장 실종 소식이 알려지자 즉시 미국 정부에 협조를 요청한 사실을 입증하고 있어 당시 박정희 정부의 진상 파악 노력이 가시적이 아니었다는 결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는 블레이크모어가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김에게 미국 여권 또는 다른 여행증을 발급했는가의 여부 질문에 대해 추적하고 있다”며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김의 한국 여권은 2년 전에 ‘만료’(expired) 됐다”고 보고한 것으로 보아 당시 주미한국대사관이 미 국무부에 미국 영주권자로서 해외여행에 한국 여권이 필요한 김 전 부장의 ‘비정상적인’ 미국 출국 경위부터 문제 삼은 것이 이를 뒷받침 하고 있다.
문서는 또 뉴욕 한국일보가 2005년 5월12일 FOIA에 의거 미 국무부에 비밀해제를 요청함에 따라 국무부가 ‘중앙외교정책기록’, ‘외교안보국기록’, ‘유럽 및 유라시아국기록’과 ‘주파리미국대사관기록’을 검토한 결과 발견한 총 4종 관련 문서 중 3종 문서를 2006년 9월8일 비밀해제 공개할 당시 “다른 행정국, 기관 또는 정부와의 조율이 필요하다”며 비밀해제를 유보한 1종 문서로 추가 검토 절차를 거쳐 FOIA 요청 4년3개월만인 올해 8월13일 비밀해제 돼 미국이 이 문서가 작성된 후 근 3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관련 정보의 민감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음을 실감케 하고 있다.
실제로 1일 현재까지 비밀해제 공개된 ‘김형욱 실종사건’ 관련 미국 정부 문서는 이들 4종의 국무부 외교 문서와 국무부가 1980년 2월29일 오후 10시20분 주한미대사관에 ‘긴급’ 전보한 ‘한국-주간현황보고서’ 1종에 불과하다.
국무부의 1980년 2월29일자 문서는 “일본 대사관이 일본 정부가 파리 경찰을 상대로 끈질기게 의뢰해 얻어낸 결과를 우리에게 전해왔다”며 “김(형욱)은 10월9일 또 다른 한인 남성과 함께 파리를 떠나 취리히(스위스)를 경유해 다란(사우디 아리비아)으로 간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거기에서부터 이야기가 흐지부지 해 진다. 프랑스 경찰은 마지못해 이 사건 수사를 종결했다”는 국무부 보고 내용이 담겨있다.
이와 관련 미 연방수사국(FBI)은 지난 2005년 뉴욕 한국일보의 FOIA 요청에 “기록을 찾지 못했다”는 결과를 통보해온 바 있으며 미 중앙정보국(CIA)은 ‘정보자유법’의 ‘국가안보에 따른 제외 조항들’을 내세워 “기록의 존재 여부도 확인 또는 부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편 한국 노무현 정부 당시 ‘김형욱 실종사건’을 조사한 ‘국정원 과거사 진실위원회’는 2005년 5월26일 중간조사 결과 발표를 통해 “박정희 정부는 (김형욱의) 회고록 출판을 막기 위해 여러 경로를 통해 김형욱에 대한 회유와 협박을 시도했으며, 이 과정에서 김형욱은 79년 10월1일 단신으로 프랑스 파리에 도착, 10월7일 저녁 파리 시내 카지노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후 실종됐다”며 김 전 부장이 김재규 당시 KCIA 부장의 지시로 KCIA 요원과 현지 연수생들, 제3국 사탐들에 의해 파리 외곽에서 살해됐다고 주장했다.
<신용일 기획취재 전문기자> yishin@koreatimes.com
미 연방하원 ‘코리아게이트’ 관련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하는 김형욱 전 KCIA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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