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인 오늘 이 곳에선 어김없이 뜨는 보름달 외에는 명절 기분이 안 나지만 그래도 햇곡식과 과일들이 있는 추석 상차림을 가까운 사람들하고 나누고 싶어진다. 십년 전 한국에서 큰 아이 하나 덩그러니 있을 때는 바쁘답시고 친정, 시댁을 오가며 그야말로 동가식서가숙의 생활을 했었다. 그런 내가 아는 사람마다 한번쯤 집에 부르지 않으면 허전하고 못할 짓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걸 보면 이민 생활 10년이 그냥 간 게 아닌가 보다.
처음 이곳에 뚝 떨어져 세 끼 식사를 맡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큰 도움을 받았던 요리책이 있었는데 얼마 전 한국일보에도 소개된 장선용 씨의 <며느리에게 주는 요리책>이다. 당시 한국에서는 여성해방주의가 인문학 전반에 편만할 때여서 이 책의 출판부인 이화여대의 일각에서 볼멘 소리가 나왔던 것을 읽은 기억이 난다. 왜 하필 딸이 아니라 며느리에게 주는 요리책인가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흔한 사진 하나 없는 심심한 요리책을 고르고 나서야 저자에게 두 아들만 있어 그 며느리들이 미국에서 세 끼 식사를 차리는데 도움을 주고자 하는 시어머니의 순수한 마음에서 이 책이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 역시 미국에서 살림을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어 고기 재는 것부터 시작해서 빈대떡, 김치, 짜장면, 샌드위치에 이르기까지 미국식의 계량 단위에 맞추어져 있는 이 책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지금도 무얼 해먹지 싶으면 이 책을 하염없이 뒤적이는 것만으로도 식욕이 돋구어지면서 가족들을 위해 팔을 걷게 된다. 이 책이 보통의 레시피 모음이 아닌 것은 객지 생활하는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자식을 객지에 보내놓고 그 아이들이 다음 방학에 올 때까지 수도 없이 연습해서 아이들을 먹였고 아이들이 떠난 후에는 그 음식을 보기만 해도 목이 메였다는 저자의 기록들이 레시피와 함께 담겨져 있다. 그 저자가 지척에 살고 계신다니 마치 스승을 만난 듯 반가운 마음이다. 책 한 권에 배인 삶의 자세와 지식이 두 아들의 집을 넘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운 식탁을 선사했는지 전하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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