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왕실은 저마다 꽤 까다로운 규범을 지니고 있다. 영국 왕실이 그렇다고 한다. 그 중 하나는 말의 절제다.
여왕이 식사 대접을 받았다. 그 음식이 정말로 맛이 있었다. 그러나 칭찬과 감사의 말은 한 번 정도로 극히 절제되어야 한다. 여왕이 너무 많은 칭찬의 말을 쏟아낼 때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언어뿐이 아니다. 표정에도, 행동거지도 상당에도 절제가 요구된다. 이는 영국 왕실의 경우만 아니다. 일종의 제왕학(帝王學) 원론으로, 한비자(韓非子)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중국의 전국시대에 한(韓)은 전국 7웅으로 불리는 강국의 하나였다. 그 한나라의 위상을 높인 군주가 소후(昭候)다.
그 소후가 어느 날 가신에게 명해 낡은 바지 하나를 간수하라고 명했다. 그 가신은 그 바지를 신하에게 하사하지 않고 아낄 때 백성들은 인색한 군주로 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소후가 말했다. “그렇지 않다. 내 스스로가 신중히 생각하는 바가 있다. 현명한 임금은 한번 찡그리거나 한번 웃는 것도 아낀다(‘明主愛一嚬一笑)고 들었다. 함부로 얼굴을 찡그리거나 웃으면 안 되듯이 신하에게 옷을 내리는 일도 신중히 해야 한다.”
군주가 얼굴빛에 감정을 드러내면 사람들은 그 얼굴을 살피면서 아첨해 정치가 혼란해질 수 있다. 따라서 군주는 언행을 극히 조심하고 신중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 제왕학 규범은 외교 프로토콜에도 적용된다. 그래서 발전한 게 외교적 수사라는 것이다. 그 말이 장중하다. 지나치게 장중해 프로가 아닌 일반인들은 외교적 수사를 잘 이해 못할 때가 많다.
외교사절을 만나는 데에도 상당한 프로토콜이 요구된다. 그러니 국가 원수끼리 만나는 데 있어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때문에 프로토콜상의 무례는 그 자체로 바로 외교정책의 일부로 간주되기도 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아키히토 일왕 부부를 예방한 자리에서 90도로 허리를 굽혀 공손히 인사를 했다. 지난봄 사우디 국왕을 만났을 때 다른 외국정상들과 달리 허리를 굽혀 인사해 이로써 두 번째 ‘과공(過恭)의 프로토콜’을 선보인 셈이다. 어떻게 보아야 할까.
오바마 외교의 실체가 무엇인지, 혹시 그 단면을 보여준 게 아닐까 싶다. 그 실체는 ‘사과 외교’이고 이런 외교방침이 ‘바디 랭귀지’로 부지 부식 간에 표출된 것이 그런 모습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일왕에게 허리를 꺽은 미국 대통령. 미국인들도 그렇지만 특히 한인들 입장에서는 썩 보기 좋은 그림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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