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에 글을 써보라는 권유를 받고 처음 떠오른 것은 김 현승 시인의 ‘창’이라는 시였다. ‘창을 사랑한다는 것은 태양을 사랑한다는 말보다 눈부시지 않아서 좋다’ 로 시작되는 이 시는 중간에 ‘명랑은 우리게 오늘의 뉴우스다’ 란 구절이 들어 있다. 어린 시절 늘 이시를 읽을때면 요즘 말로 이 구절이 쌩뚱맞다는 생각이 들곤했다. 술술 읽혀가는 싯구들 속에 왜 갑자기 이런 구절을 넣었을까 싶었다.지금 이제 나이를 어느 정도 먹고 나서 다시 읽어 보니,참 웃을 일이 드문 요즘 같은때 명랑은 정말 뉴우스일지도 모르겠다.창은 문과는 다르게 참 은밀하게 안과 밖을 연결하는 통로이다.문을 열면 우리는 세상 밖으로 나오지만 창을 통해선 그저 바라보기만 할뿐이다.창을 통해 바라 보는 하늘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의 풍경은 몇 시간을 보아도 지루하지 않다.또한 산책중에 밖에서 들여다 보게 되는 창안의 세상은 때로는 푸근하고 때로는 많이 지친 모습을 보여 준다.지나치는 사람을 배려 하듯 예쁘게 꾸며진 집은 나의 눈을 즐겁게 하고 열려진 창으로 들리는 웃음 소리나 음악 소리는 귀와 마음을 기쁘게 한다. 나의 집은 창을 통해 어떻게 비춰질까…아마도 너무 삭막해서 정말 멋없는 주인이 살고 있음을 바로 보여줄 것 같다.멋진 액자라도 잘 보이게 걸면 좋으련만 아직도 맘에 드는 그림을 못찾았다는 이유로 흰벽들만이 창을 통해 보일뿐이다.그나마 다행인건 안에서 바라 보는 창의 풍경은 푸르다는 것이다. 앞집과의 간격이 좀 있고 그 사이 잔디가 있어 문득 내다 보는 밖의 그림은 좋은 편이다.이 여성의 창을 통해 내가 또 다른 세상을 바라 보게 되듯이 누군가도 이 창을 통해 내 안을 들여다 볼 것이다.내가 바라 볼 세상이 많이 푸르고, 명랑이라는 뉴우스로 꽉 찬 세상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어 본다. 그렇듯 또한 나의 집과는 다르게 이창을 통해 보여지는 나는 삭막하지 않은 그런 모습이면 좋겠다.조금은 치장도 하고, 멋도 아는 그런 사람으로 보여지면 좋겠다.시인이 쓰듯이 ‘창을 깨끗이 지킴으로/눈들을 착하게 뜨는 버릇을 기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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