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둘이서만 사는 살림이 줄어들었다 해도 부엌 일 만은 그리 많이 줄어지지가 않는다. 썰고 무치고 볶고…거의가 다 손가락을 사용하는 일 들이다. 이젠 치료를 받
아 그만그만 해졌지만 손가락을 쓸 수 없었을 땐 칼질 하나도 못했던 적이 있었다. 시
집가서 사는 딸이 어느날 ‘엄마 한테 꼭 맞는 칼’이라며 하얗고 아주 가벼운 세라믹칼
하나를 선물로 주었다. 들기도 잘 드는것이 정말 어찌나 좋은지! 도대체 얘는 어디서 어떻게 알고 이리도 좋은걸 사 주었을까? 쓰면서 늘 딸아이의 마음에 고마움을 느낀
다. 그러고보니 ‘칼은 사람 사이를 자르는 것이라 선물을 하지않는다’는 생각을 싹뚝 잘라버린 셈이 되었다.
워낙 칼이 마음에 들다보니 쓸 때 마다 ‘이걸 좀 사서 이런 저런 이유를 붙여가며 나 누어 주면 얼마나 좋아하며 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선물로 받은 내가 딸
에게 어디에서 얼마에 등등을 대 놓고 물어 볼 수도 없는 노릇이라 일단 나가 보면 알 겠거니 하고 주방기구점으로 갔다. ‘찾아서 당장 몇 개 정도는 사 올’ 속셈 이었다. 그
런데 웬걸, 몇 군데를 다 가봐도 보이지않아 빈 손으로 돌아와서는 결국 딸에게 전화 를 걸었다. 통화를 하고난 후에서야 아직은 이 칼이 막 사서 이리저리 인심좋게 돌릴 만큼 녹녹한 것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이사람 저사람 떠 올려가며 혼자 즐거워 했던 나의 궁리가 이 번엔 이렇게 ‘궁리’만으로 끝이 나고 말았다.
흔히들 하는 말로 ‘남들이 다 제 맘 같은 줄로 알고 사는 사람’들의 명단이 어딘가에
나 붙는다면 아마도 우리 아버지와 나의 이름도 끼어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 어머니
의 표현을 빌리자면 본체없는 일(남을 위한답시고 돈 들여 시간 들여 애를 써 주고도 인사는 제대로 못 받고 경우에 따라서는 오해마저 받는 그런 일들)을 하는 편이기 때
문이다. 어쨌던 어머니의 쓴소리에도 고쳐지지 않았던 그 생색 안나는 일들을 나도 똑같이 하며 산다는 것이 사실은 나쁘지 않다. 느긋한 기분으로 유행가 한자락을 부
르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 오르면 나는 저절로 마음이 따뜻하고 달콤해지기 때문이
다. 아버지의 마음을 이렇게 내가 알듯이 또 내 마음을 우리 아이들이 알아 주며 살아 가기만 한다면, 설사 ‘다 제 맘 같은 줄’로 잘 못 알고 사는 것도 결코 외롭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 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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