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스위스월드컵. 한국이 첫선을 보였다. 헝가리에 0대9, 터키에 0대7. 2경기만에 예선탈락이 확정된 한국팀은 세계의 높은 벽을 절감하며 귀국짐을 쌌다. 그로부터 12년뒤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 또다른 코리아 북한이 첫선을 보였다.
“…1963년에 모란봉팀.기관차팀 등 30개 클럽을 통틀어 가장 우수한 30명을 선발, 인민군에 편입시키고 책임코치 명례연의 지도 아래 맹훈련에 들어갔다. 선수들을 평양의 모란봉 밑에 새로 지은 숙소에 수용해 매일 아침 6시부터 줄기찬 훈련을 계속했다. 밤 10시 이후에는 외출이 금지됐고, 전원 미혼인 이들은 대회가 열리는 66년 7월까지 결혼을 금지당했다…” (77년 출간된 <월드컵 축구-몬테비데오에서 뮌헨까지> 중에서)
그럼에도 첫경기에서 소련에 0대3 완패. ‘약체 코리아’의 기억을 되살리는 듯했다. 칠레와의 2차전에서는 1대1 무승부. 그것은 북한돌풍의 전주곡에 불과했다. 우승후보 이탈리아와의 3차전에서 북한은 박두익의 결승골로 1대0 승리를 거뒀다. 영국의 라디오중계자는 “로마제국이 무너지고 있다”고 소리쳤다. 북한의 8강진출(당시는 16팀 출전)에 세계가 놀라고 있는 동안 이탈리아선수단은 귀국때 공항에서 열받은 팬들로부터 썩은 토마토세례를 받아야 했다.
포르투갈이 배출한 불세출의 영웅 에우제비우만 아니었다면, 북한은 4강까지 치달을 수도 있었다. 포르투갈과의 준준결승에서 기습공격으로 3대0으로 앞서나가다 나중에 투입된 에우제비오에게 4골을 내주며 3대5로 역전당했다. 한 신문은 “북한의 3대0 리드는 온세상이 뒤집힌 듯한 충격이었고, 그것이 또 뒤집힌 것은 나비가 다시 번데기로 된 것처럼 믿을 수 없는 일이었”고 썼다.
◇…북한의 8강돌풍은 한국에서 갖가지 웃지못할 얘기들을 낳았다. 일부는 확실한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와전되거나 지레짐작으로 빚어진 것이었고 일부는 남북대결양상이 ‘인정선’을 오가던 당시의 시대상이 빚은 것이었다.
그중 하나, 북한의 사다리전법에 관한 신화다. 단신의 북한선수들이 문전에서 공중볼을 다툴 때 동료선수들이 잽싸게 인간사다리를 만들어줘 더 높이 뜰 수 있게 해줬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도 정설처럼 인터넷에 떠돌거나 일부 매체에 인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동료선수의 어깨를 짚고 점프한 것이 와전됐다고 한다.
또하나는 8강돌풍 주역들이 ‘이상행동’ 때문에 아오지탄광으로 유배되거나 수용소에 투옥됐다는 등 소문이다. 소문으로 전해진 이상행동은 북한선수들이 대회도중 또는 귀국행 기내에서 술을 진탕 마시고 여자(여승무원)들에게 추근댔다는 것 등이다. 얼추 확인된 이상행동도 있다. 에우제비우의 자서전에 따르면, 북한선수들은 경기를 앞두고 식이요법 등으로 몸조리를 하기는커녕 훈련도 거른 채 포식을 거듭하며 술을 많이 마셨다고 한다. 이는 “잘 먹어야 잘 뛴다”는 비과학적 상식에 근거한 북한선수단 입장에서 이상행동이 아니라 정상행동이었다는 지적이다. 선수단 집단처벌설과 관련, 2002년에 제작된 영국의 한 다큐멘터리는 해당선수들에 대한 인터뷰와 가정방문 등 확인취재에 바탕해 사실무근이라고 결론지었다.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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