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여성의 창에 올리는 첫 번째 글에서 이미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과 희생을 이야기한 바 있다. 이번에는 한 엄마의 죽음을 통해서 그 희생이 어느 정도일 수 있는지를 이야기 하고 싶다.
지난 4월에 있었던 일이다. 이른 새벽 서울에서 걸려온 전화소리에 잠을 깼다. 나와 오랜동안 친분이 있는 지인의 암 소식을 전하는 전화였다. 그 뿐만이 아니라, 이제 겨우 한 두달 밖에는 남지 않았다는 비보와 함께 미국에서 살고 있는 아들에게도 전해 달라는 부탁의 전화였다. 나는 물론, 그녀의 아들도 엄마가 그동안 지병이 있었음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는 아들에게 말하기 전에 먼저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담담하게 그 사실을 시인하며 내뱉는 말인 즉, “내가 없는 것이 아들한테는 더 나아. 내가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이 길 밖에 없어.” 자초지종을 물어 본 결과, 지난해 11월 암에 걸렸음을 알고 나서, 가족은 물론 그 누구에게도 내색하지 않고 병을 키우기로 작정하였다고 한다. 그녀가 걸린 암은 그 당시 수술을 받았다면 쾌차할 수 있었던 암 종류였다. 그러나 그녀는 죽음을 택함으로써 아들에게 보험금을 남겨 주고 싶다고 했다. 그 길만이 아들에게 짐이 되지 않고 도움이 된다는 어리석은 계산을 하였던 것이다.
청천벽력의 비보를 접한 아들은 반신반의 하며 서둘러 서울로 향했다. 결국 그녀는 3주 후에 세상을 떠났고, 아들은 예상치도 않았던 큰 액수의 보험금을 지급 받았다. 그 이후 벌어진 일련의 일들은 나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 온 아들은 그동안 레지던트로 근무하고 있던 병원에 사직서를 내고 당분간 여행을 하며 쉬겠다고 했다. 의사를 계속할 지의 여부도 심사숙고 해 보고 싶다고 했다. 예기치 않았던 엄마의 죽음이 가져다 준 경제적인 여유가 그동안 숙명으로 받아 드리고 잘 참아 왔던 메마르고 힘든 수련의 생활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다. 의사가 되고 안 되는 것이 아들의 행복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리라. 하지만 과연 이것이 아들을 위해 죽음을 택한 엄마가 기대했던 것이었을까?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인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다만 엄마의 죽음이 헛되고 무모한 선택이 아니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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