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를 비롯한 히말라야의 고봉을 오른 알피니스트들이 하산 후 카트만두에서 반드시 만나야 하는 사람이 있다. 올해 87세의 엘리자베스 홀리 여사다. 이 할머니를 만나지 않으면 어떤 알피니스트도 자신이 정복한 고산등산 기록을 등산계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시카고 출신으로 ‘타임’지 네팔 특파원이었던 홀리 여사는 히말라야에 반해 직장도 팽개치고 카트만두에 눌러 앉았다. 그는 지난 50년 동안 히말라야 14좌(8,000미터 이상)에 오른 모든 알피니스트를 인터뷰 했으며 이들의 정상 상황 설명을 상세히 기록해 히말라야 라이브러리를 만들었다.
네팔정부도 갖고 있지 않은 희귀한 자료들이다. 따라서 히말라야의 14좌 정상을 오른 알피니스트들은 자신의 기록 등록을 위해 홀리 여사를 만나는 것을 의무로 간주하고 있으며 세계의 모든 산악단체가 히말라야에 관한 한 네팔 정부보다 ‘홀리의 기록’을 더 중요시하며 공식기록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 엘리자베스 홀리 여사가 지난주 방영된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오은선의 히말라야 14좌 등반 중 칸첸중가 정복은 인정하기 곤란하다고 말해 한국 산악계를 발칵 뒤집어 놓고 있다. 오은선이 제시한 안개 낀 칸첸중가 정상 사진은 카트만두 교외 어디서나 찍을 수 있는 종류의 사진이라고 혹평한 후 진위를 밝히는 것은 한국 산악계의 책임이라고 했다.
게다가 오은선의 정상 정복을 도왔던 누르부라는 세르파가 오은선이 촬영한 것은 정상이 아니라고 양심선언을 해버렸다. 산악계의 황우석 파동인 셈이다. 오은선은 지금 한국에서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해 있다. 여성으로는 세계 최초로 8,000미터 이상 되는 히말라야 14좌를 정복한 알피니스트이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초청을 받는가하면 정부는 그녀에게 훈장까지 수여하려는 것을 대한산악연맹이 보류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악인이 명예의 노예가 될 때 거기에는 비극이 따른다. 산악인은 ‘겸손’의 대명사다. 왜냐하면 고산 등산은 생명을 걸고 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겸손’이 몸에 배어 있어야 살아 남을 수 있다. 여성 산악인 고미영은 왜 낭가파르밧에서 실족하여 목숨을 잃었는가. 세계 최초 14좌 등반이라는 타이틀을 누가 먼저 차지하느냐를 놓고 오은선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 한해동안 4개의 고봉(8,000미터이상)을 오르는 무리한 등산을 하다 피로가 누적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세계 최초’의 타이틀은 오은선이 차지했으나 이번에는 그녀가 복병을 만났다. ‘세계 최초 여성 히말라야 14좌 정복’ 타이틀을 놓고 오은선의 뒤를 쫓고 있는 스페인의 여성 산악인 파사반이 오은선의 정상 정복이 허위라는 상세한 근거를 런던 타임스, 뉴욕 타임스 등을 통해 주장 함으로써 파문을 일으킨 것이다. 오은선은 칸첸중가의 정상에 이르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계곡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오은선의 정상 정복 하자가 밝혀지면 파사반이 ‘세계 최초’가 된다.
‘세계 최초’가 되면 돈을 벌게 되는 등산계의 풍토가 문제다. 어떻게 해서든 정상에 오르기만 하면 된다는 등정주의가 상업주의와 연결되어 산악계의 타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어디를 오르느냐보다 어떤 루트를 어떻게 오르느냐의 등로주의가 21세기의 흐름이 되어야 한다. 오은선도 ‘세계 최초’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정상 아닌 곳을 정상으로 오판 하는 실수를 저지른 것 같다. 한국 산악계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오은선이 다시 카첸중가에 오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프로는 자신과 싸워 이겨야 진짜 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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