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와 화샤는 내가 회사 다닐때 함께 일하던 보스 였습니다. 에디는 회사 다니기 시작한지 10년쯤 되었을때 수퍼바이져였고 화샤는 그보다 한 10여년 후의 수퍼바이져 였습니다.
에디는 휴전협정이 있고 얼마 안되어 한국에 파병된 스물한살의 젊은이 였습니다.그는 한국 새를 좋아합니다. 휴전선- 아무도 찾아주는이 없는 곳에서 총대를 메고 북쪽을 향해 있을때 오로지 자기를 찾아 준것은 이름모를 새들 이었답니다. 그후 그는 휴가를 갈때면 망원경을 들고 새를 쫒는 bird watcher 가 되었습니다.
어느날 에디가 뇌종양 수술을 받아야 한다며 당분간 회사를 나올수 없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사무실로 찾아 갔습니다. 그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기도 해줄까” 그는 잠시동안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오케이”- 영어로 기도 하기가 서툴러 한국말로 짧게 했습니다. 그리고 ”I prayed in name of Jesus” 하며 눈을 떴을때 그의 눈에서도 나의 눈에서도 무언가 뎅그렁 떨어졌습니다. 거의 일년후 에디는 다시 회사로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한마디 던졌습니다 “ 나 크리스챤 됐어”
화샤는 열여덟살 나이에 이란에서 홀로 미국에 들어왔던 젋은이 였습니다. 똑똑하고 기억력이 유난히 좋은 그는 불법체류자란 신분과 언어의 장벽을 넘고 일어선 중동인 입니다. 그는 아주 부지런하고 무슨일이나 열심이었습니다. 화샤는 보스 였지만 또한 친구였습니다. 나이는 나보다 댓살 적지만 우리는 같은 또래의 아들과 딸이 있어 아이들 교육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란인들의 사고방식이 우리와 비슷 하다는걸 알았습니다. 자연히 교회이야기도 나왔지만 늘 농담을 좋아하는 그는 “알라 알라” 하며 두손을 높이 들었다 내렸다 했습니다. 어느날 그가 요즈음 소화가 잘 안되는것 같다고 하길래 병원에 한번 가보라고 권했습니다. 진단을 받은 그는 위암 말기에 다른곳까지 퍼져 수술도 할수 없는 상태라는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얼마후 내가 한 열흘쯤 휴가를 갔다 돌아 왔을때 그는 이세상 사람이 아니고 장례까지 모두 치른 후였습니다. “아!” 외마디가 나왔습니다. 가슴이 쓰렸습니다. 그리고 미안했습니다.
지난봄 에디의 메모리얼 서비스가 있다는 연락을 받고 월넛크릭에 있는 조그만 교회를 찾아 갔습니다. 여러가지 진열된 사진중에 내눈이 꽂힌곳은 유아부 교실에서 평화롭고 즐거운 모습으로 애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할아버지 에디의 모습이었습니다. 마음이 따스했습니다. 그리고 부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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