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김정은 후계구도가 가시화되고 있다. 공식적인 후계자 지명은 강성대국의 완료시점인 2012년이 될 가능성이 크지만 지난주 열린 노동당 3차 대표자회를 통해 김정은이 다음 세대의 지도자가 될 것임은 명확해졌다.
북한 내부의 반응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3대 세습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은 싸늘하다.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외국 언론은 북한의 권력세습에 비판적이며 김정은 체제의 불투명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과연 불안정한 김정은 체제가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은 없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우선 북한 세습체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근대 민주사회에 사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아직 20대 중반밖에 되지 않은 검증도 안 된 아들로의 권력이양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지만 봉건왕조 체제적 성격을 띠고 있는 북한 입장에서는 오히려 당연하게 생각될 수 있다.
조선 왕조시대를 보면 장자 이외의 아들이 권력을 세습한 경우도 많았고 또 후계자가 어린 경우 친인척이 뒤에서 후견인 노릇을 하며 권력을 지탱하기도 했다. 또한 어린 후계자가 지도자로 성장하지 못하는 경우 중간에 교체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왕조가 붕괴했던 것은 아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남인 김정은이 후계자로 부상한 것이나 여동생 김경희와 매제 장성택 등 친인척이 후견인으로 등장한 것도 이런 관점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선왕조 이후 일제 식민지를 겪고 근대 시민사회의 경험이 없는 북한의 경우 조선왕조가 그들 정치문화의 준거 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이 대장이 되고 당 중앙 군사위 부위원장이 된 것은 김정일 체제하에서 강조되어 온 선군정치를 지속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보인다. 또한 경제나 외교 안보 면에서도 큰 방향 전환의 징후는 찾아보기 어렵다.
현재 북한의 최대 과제는 단연 김정은 체제의 연착륙이다. 더욱이 김 위원장의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은 후계체제 공고화를 위해 가속도를 낼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이 한반도에 긴장관계를 조성할 가능성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많지만 오히려 이러한 상황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진전에 호기가 될 수도 있다.
예컨대 남한 정부는 북한의 세습체제를 비판하기보다는 김정은 체제를 인정해 주고 남북관계 진전과 비핵화를 위해 북한의 협조를 요구해 볼 수 있다. 김정은 체제가 무너진다고 해서 북한이 붕괴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북한에 안정적인 후계체제가 자리 잡는 것이 남한에도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위 ‘천안함 정국’으로 경색된 남북관계의 물꼬를 틀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미국도 비슷한 시각에서 북한과 대화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경색되면서 중국에 대한 북한의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지만 이는 미국은 물론 북한도 원하는 상황이 아니다. 이번 강석주, 김계관 등 대미 외교라인의 승진으로 미루어 볼 때 북한이 얼마나 북미관계 개선에 중점을 두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포스트 김정일 체제의 북한이 어떤 모습이 되느냐는 한국과 미국에도 중요하다. 물론 김정은 체제의 앞날은 험난하다. 경제적 어려움과 국제적인 고립을 벗어나지 않는 한 북한의 고난은 계속될 것이고 중국에의 의존도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또한 북한 내 불안정한 체제가 지속될 경우 오히려 내부 결속을 위해 한반도에 긴장관계를 조성할지 모른다.
지금 북한은 매우 어렵고 중요한 시기를 맞고 있으며 외부의 도움이 절실하다. 따라서 어쩌면 지금이 그동안 한국정부가 주창해온 ‘그랜드 바겐’을 시도해 볼 수 있는 호기일지 모른다. 김정은 체제가 안정되는 것이 북한 뿐 아니라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역발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신기욱 / 스탠포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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