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울목을 따라 사라진 시냇물 소리같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시간들이 있다. 그리고 가슴 밑바닥으로 고여 드는 그리움은 때때로 나를 팔불출로 만든다. 오늘새벽 따라 소나무 가지위에 걸린 반달이 은빛구슬을 쏟아 놓은 듯 눈이 시리다. 요즈음은 부쩍 코끝이 찡해질 때가 많다. 잠시 머물다 어느 날 문득 사라져 버리는 삶에 대한 생각으로, 그리고 나를 슬프게 하는 실체를 생생히 만져본 아픈 이별들 때문이다.
다리가 아프도록 감사절 준비에 뛰어다니던 일전 모습과는 달리 사뭇 적막감마저 드는 집안에 앉아 있노라니 이런 저런 기억들이 많이 떠오른다. 시어른과 조카들은 서울로 갔고 딸아이는 12월 중순경에나 집에 올수 있고, 이유야 어찌되었든 우리 내외는 둘만의 조용한 감사절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언제나 집안 대소사와 명절을 준비하시던 형님의 빈자리가 오늘 따라 더 공허 하게 다가온다. 지금도 “몇 시쯤 도착할 수 있어?”라고 전화 너머로 애교 섞인 음성이 들려 올 것만 같고 나는 서둘러 형님 댁을 향하여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충동을 누른다.
가족이라는 인연으로 만나서 살아오는 동안 우리는 항상 서로의 곁에서 영원히 함께 있어 줄 꺼라고만 생각 했는데 건강하시던 형님의 갑작스런 이별은 너무나도 충격적 이였다. 형님이 안 계신 빈자리가 내 마음에 차 오를 적마다, 주위에 있는 모든 분들에 대한 감사와 소중함에 대한 사명감을 진지하게 생각 하게도 되었다. 상실이 주는 슬픔과 그리움, 또 주변의 모든 것들이 잠시 동안만 우리와 머물다 간다는 슬픈 진실도.
David Kessler 는 그의 저서 Life Lessons 에서 “이 삶의 가장 큰 상실은 죽음이 아니다……. 사랑이야 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소유하고 간직하고, 떠날 때 가지고 갈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라고 피력 하였다.
어느 날 뜬금없이 “쥴리야, 난 네가 왜 이리 예쁘지?”라고 하시며 내 어깨를 토닥여 주시던 손길이 다시 생각난다. 이것은 처음이자 마지막 나를 향하여 들려주신 사랑의 고백 이였다. 온 가족들의 생일이며, 잔치며 그리고 잠시 계시다 가시는 손님들 까지도, 세세히도 맡아 챙겨주시던 넉넉한 마음의 소유자이셨다. 형님과의 이별을 통하여 내가 숨 쉬는 이 축복의 자리에 머무는 동안 나도 넉넉한 사랑의 상속자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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