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가 궁정 도화서 화가였던 1778년 비단에 그린 ‘과거 시험 풍경’. 해외에 나와있는 유일한 비단 풍속화로 추정된다.
단원 김홍도(1745-1806)의 희귀한 풍속화 한 점을 북가주의 한 미국인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한국과 미국의 고미술 전문가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그림의 제목은 ‘과거시험 풍경’(Scene of National Examinations)으로 1778년 김홍도가 궁정화가로 활동하던 전성시절에 그린 작품으로 한국의 문화재 전문가가 확인했다. 더구나 이 그림에는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평론가로 유명한 표암 강세황(1713~1791)의 화평이 붙어있어 가치로 따지면 엄청날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후기 문인 강세황 화평 있는 유일한 작품
은퇴 경관 패트릭 패터슨(Patrick E. Patterson?67)이 소장하고 있는 이 그림은 화선지가 아닌 비단에 채색한 것이며, 두루마리 혹은 병풍 그림이었으나 일제시대에 일본인이 구입, 매트를 얹고 액자를 끼운 일본식 형태로 지금까지 보존돼왔다.
그림의 크기는 매트 위에 드러난 부분만 27.5x14 3/8인치(69.85x36.50cm)이고, 매트에 가린 부분이 조금 더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림에는 김홍도의 낙관이 들어있지 않으나 당시 궁정 도화서의 화가들이 비단에 그린 그림에는 낙관하지 않는 것이 통례적인 일이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특별한 관심을 끄는 것은 과거 보는 선비들의 다양한 모습이 사실적이며 재미있게 묘사된 그림 내용으로, 18세기 과거장의 풍경이 풍속화로 그려진 적이 없어 한국역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란 알다시피 조선시대에 왕이 3-4년에 한번 열고 인재를 등용하던 국가고시로, 응시자들은 궁정 뜨락에 한 방향으로 열을 지어 앉아 시험을 치른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그림에서는 커다란 우산들을 칸막이 혹은 햇빛 가리개로 사용했고, 표지판으로도 활용된 등불이 곳곳에 세워져있으며, 무리지어 있는 사람들의 분위기도 매우 자유로운 모습이 특이하다.
이 그림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해군 중령 유진 쿤(Eugene Kuhn)이 1952년 8월에 구입, 당시 한국의 유명한 고고학자 김원용(1921-1993) 박사가 직접 서명한 인증서(Letter of Authenticity)와 함께 50년 이상 소장해왔으나 쿤 중령의 사후 2005년 3월 프레스노의 자택에서 열린 재산매각(estate sale)에서 현 소유주인 패트릭 패터슨이 구입했다.
은퇴 경관이며 기프트샵도 운영했었다는 패터슨은 “큰 돈을 줬다”고만 말하고 구입액수는 밝히지 않았다. 자신이 희귀한 골동품을 보는 눈이 있어 이 작품을 구입했다는 그는 구입 당시 쿤 중령이 간직해온 인증서와 매매증서도 함께 받았으나 보다 확실한 가치를 알아내기 위해 오랫동안 열심히 연구하고 한국의 전문가들에게 감식을 의뢰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2007년 2월 경주대학의 정병모 교수(문화재학과)가 자비를 들여 미국으로 찾아와 사흘 동안 머물며 이 그림을 자세히 검사하고 연구한 다음 김홍도가 1778년 그린 작품으로 인정했다. 실제로 정 교수는 그해 4월 국립국악원 잡지에 기고를 통해 이 그림이 “김홍도의 최고 걸작 중 하나”라고 썼으며 글로만 접하던 과거 시험장의 혼란스런 광경을 그림으로 그린 걸작이라고 예찬하며 역사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그림이니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패터슨은 자신도 한국이 이 귀중한 자산을 적절하게 보존하기 원해서 수년전 한국의 해당 기관들과 연락을 취했으며 국립미술관과 서울시장이 구입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사를 밝혔지만 한국 정부의 미술품 구입절차가 너무 복잡해서 포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김홍도과 강세황의 작품은 국보여서 국외로 반출이 불법이기 때문에 이 그림은 해외에 나와있는 매우 드물고 중요한 한국미술일 것”이라고 전하고 특히 “김홍도가 비단에 그린 해외 유일의 풍속화이며, 강세황의 서화 화평까지 들어있는 유일무이한 작품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해외 뮤지엄에서 볼 수 있는 김홍도 그림은 LA카운티 미술관 한국미술실에 전시돼있는 ‘풍경’(본보 장재민 회장 부부의 기증)과 파리의 기메(Guimet) 뮤지엄이 소장한 병풍 한 점이 유일한데 둘 다 화선지에 그린 작품이다.
패터슨은 “한국미술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그림이라 궁극적으론 한국으로 돌아가기를 바랬지만 미국내 한국인구가 많아진 지금은 미국의 뮤지엄에서 잘 보관해 전시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다”고 밝혔다.
‘과거 시험 풍경’에 쓰여있는 강세황의 화평을 고 김원용 박사는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봄날 여명에 수많은 과거 응시자들이 열심히 실력을 겨루고 있다. 붓에 먹을 묻힌 채 생각에 잠겨있는 사람, 책을 들여다보는 사람, 막 쓰기 시작하는 사람, 이야기하는 사람, 봇짐에 기대 한 잠 자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초는 밝게 타고 있고, 사람들의 소리가 시끄럽다. 마치 하늘에서 그린 것처럼 훌륭한 스케치구나. 이제 늙고 한평생 책을 읽기에 지친 나에게는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그림이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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