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새 지도자 김정은이 급부상하고 있다. 세 살 때부터 명사수였으며, 7개 국어를 구사하는 포격의 귀재란 엄청난 선전 속에 김정일 후계자로 만들어지고 있다. 27세, 젊디젊은 나이에 벌써 별 넷을 단 대장이란다. 남들은 30년 이상 복무해도 달까 말까한 별 넷을 김정일 아들이란 프리미엄으로 단번에 거머쥔 결과다.
후계자 만들기에 그토록 속도를 내면서 무리수를 두고 있는 걸 보면 내일을 장담하기 어려운 김정일이 급하긴 급했나보다. ‘정은’이란 이름을 가진 주민은 모두 개명하라는 지시로 현재 북한에는 ‘김정은’ 외에는 어떤 성을 가진 ‘정은’이도 없다. 올해 생일을 뜻 깊게 기념하라는 지시가 떨어지면서 ‘충성의 선물’ 경쟁도 벌어졌다. 초호화 관저와 별장을 신축 중이라는 외신도 나오고 있다. ‘척척척 우리 김대장 발걸음, 힘차게 내디디면 온 강산과 인민이 받든다’는 ‘발걸음’ 노래가 인민가요가 된지도 꽤 오래됐다.
그렇다고 속성으로 만들어진 후계자 운명이 평탄할 것 같진 않다. 김정은 실체가 인민들 사이에 알려지는 순간 만들어진 후광이 무너질 공산이 커, 재일교포 출신 고영희가 엄마란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고모 김경희 손에 컸다는 이력으로 위장하고 있다.
또 어릴 때부터 권력을 향유해 온 지도자가 북한 사회 변화와 인민의 마음을 제대로 읽을 리 만무해 김정일보다도 못할 가능성이 높다. 줄서기에 목숨 걸고 있는 측근들 거짓말 덕분에 사리판단이 흐려질 확률 또한 높다.
절대 권력 이양에는 절대적 시간이 필요한데 속성 재배된 지도자에겐 시간이 너무 없다. 북한에 민주화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면 루마니아 독재자 운명을 답습할 수밖에 없다. 이게 인민을 속이고 절대 권력을 재생산하려는 백두혈통 김정은 청년대장의 운명이다.
김정일 권력이 김정은으로 온전하게 승계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군권과 당권의 이양이 그 첫째다. 문제는 이런 필요조건보다 후계자가 갖춰야 하는 충분조건이 아직 미흡하다는 점이다. 기득권 세력의 위세에 눌려 지내는 일반 당원들의 충성심이 따라갈 것인지, 별 달아준다고 김정은 사람이 될 것인지, 인민들 지지와 호응을 끌어낼 수 있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김정일조차 확신이 서지 않아 여동생 김경희한테 대장 칭호를 주면서 당 정치국 위원으로 임명하고,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을 당 정치국 후보위원과 중앙군사위 위원으로 선임했다. 그리고 최룡해(황북도당책임비서), 리영호(군 총참모장), 김경옥(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을 김정은 후계구도를 위해 요직에 앉혔다.
강성대국 건설을 1년 앞둔 상황에서도 부사와 형용사만 있고 구체적 숫자가 없다고 불평하는 간부들 심경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김정은 후계구도는 안착하기 힘들다. 먹고 살기 위해 외부 정보에 민감한 주민들의 생존문제를 제대로 챙기기 못하면 지지기반은 밑에서부터 붕괴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번 신년공동사설에서는 자력갱생과 경공업 재건 밖에는 내세운 미래비전이 없었다.
이제 북한 민심은 변하고 있다. 그리고 절대 권력에 대한 의심이 확산되고 있다.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는 김정일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은지 오래됐다. 북한 주민들은 ‘가는 길 험난하면 버리고 간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절대 권력의 정통성이 이미 흔들리고 있다. 설상가상 김정은 후계구도가 안착하기 전에 김정일이 사망한다면 절대 권력의 공백을 선점하려는 권력투쟁의 쓰나미가 거세게 불어 닥칠 게 뻔하다. 이게 김정은 앞에 놓인 과제이자 운명이다.
김영수 서강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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