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새로운 마음으로 맞이하기 위해 나름대로 몇 가지 계획을 세웠다. 그중에 하나가 옷가지와 핸드백을 정리하여 구세군에 갖다 주는 일이다. 옷을 차려 입고 외출하려고 하면 마땅히 입을 만한 것도 별로 없는데, 자그마한 내 옷장에는 왜 이리도 필요 없는 옷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옷장에 있는 옷들 중에서 입을 것과 보낼 것을 가려내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몇 년 전에 옷장을 정리할 때 그대로 걸어 놓았던 옷들도 뭐가 그리 아까운지 또 망설이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1년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은 다시 안 입게 된다며 정리를 빨리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작은 것 하나도 아끼며 생활하는 여자들로서는 어찌 그게 쉬운 일인가?

그러나 아깝게 생각하지 말자 마음을 먹고 그냥 자리만 차지했던 정장들을 과감하게 비닐백에 담기 시작했다. 오래되고 낡은 옷보다 그래도 입을만한 좋은 옷들을 기부하는 것이 훨씬 좋지 않겠는가? 드디어 일이 끝나고 나니 큰 비닐백으로 세개나 되었다. 시간을 오래 지체하면, 그 중 몇 가지를 다시 꺼내서 옷장에 걸어 둘 것 같아서 얼른 구세군에 갖다 주었다. 하지만 이렇게 옷들을 기부하고 나면 기분이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왜냐하면 아직도 옷장 한 구석에 결단을 내리지 못한 긴 코트들을 남겨 두었기 때문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속으로 자책했다. 그리고 10년 이상 가지고 있었던, 정말 비싸게 주고 산 긴 코트들을 비닐백에 넣어 다시 구세군으로 내려갔다. 이 작은 일 하나도 빨리 결정하지 못하고 주저주저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지만, 코트들을 갖다 주고 나오는데 그제서야 기분이 말할 수 없이 좋았다. 옷장을 바라보니 공간도 있고 이제야 정말 홀가분한 마음이 되었다.

나에게는 별 필요 없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유용한 것들을 나누는 일은 참 멋진 삶인 것 같다. 우리 인생은 여행이라고 했는데, 여행은 짐이 단촐하고 가벼울수록 더욱 즐거운 법이다. 새해에는 내게 꼭 필요 없는 것들까지 아깝다고 무조건 갖고 있지 말고, 이렇게 나누는 삶에 좀 더 길들여지고 싶다. 욕심과 미련으로 필요 없는 것들을 내 작은 손에 움켜쥐고 살기보다는 손을 펴고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싶다. 이렇게 작은 것 하나도 나누는 연습을 한다면, 내가 가진 소중한 것들도 아낌없이 나누게 되지 않을까? 묵은 옷들을 정리하고, 묵은 욕심까지 털어내니 새해를 시작하는 마음이 한없이 가볍다.

(상항 한국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