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교육 천국이다. 한인들에게 이민목적을 물어보면 십중팔구 ‘자녀교육’을 꼽는다. 서부명문 워싱턴대학(UW)엔 한인 학생(유학생 포함) 수가 2,000여명을 헤아린다. ‘8학군’으로 불리는 벨뷰의 중고교 캠퍼스엔 한국 조기 유학생들이 떼로 몰려다닌다.
한국 대학들이 상아탑에서 ‘우골탑’으로 전락한 건 옛날이다. 농촌 부모들이 자녀 학자금을 마련하려고 재산 1호인 소를 내다 팔았다. 그 땐 미국 유학을 꿈꾸는 젊은이가 많았다. 접시 닦기 ‘알바’(아르바이트)로 대학 공부를 할 수 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요즘 알바 미국 유학을 꿈꾸는 사람은 정신 나간 사람이다. 접시를 밤새도록 닦아도 천정부지로 치솟는 등록금을 감당할 재간이 없다. 옛날처럼 풍성한 장학금을 기대하는 사람도 세상물정 모르긴 마찬가지다. 미국 공립대학들도 이미 우골탑으로 변모했다.
알바 여고생인 LA의 김모양은 ‘바늘구멍’이라는 UCLA 경영학과에 합격하고도 등록금이 없어 진학을 포기했다. 그녀는 일단 커뮤니티 칼리지에 진학해 돈을 모은 후 UCLA에 편입할 계획이다. 명문대 합격을 포기하고 울면서 커뮤니티 칼리지로 발길을 돌리는 한인 학생은 김양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한인 학부모들은 상상도 못했던 현상이다.
요즘 UW에선 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GPA(내신 성적) 만점(4.0) 지망생이 어이없이 낙방했다. 재정적자에 골병든 주정부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UW 지원금을 대폭 삭감하자 학교당국이 등록금을 거의 3배나 많이 내는 타주 출신 지망생들과 외국 유학생들을 더 많이 받아들이려고 성적이 우수한 주민 지망생들까지 대거 탈락시켰기 때문이다. 한 학부모는 GPA 3.8 딸이 불합격 통보를 받자 “주민 학생을 제쳐놓고 타지 학생을 합격시키면 주립대학이라 할 수 없다”며 집단소송을 제기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4반세기 전 UW 등록금은 연간 1,500달러였다. 주정부가 총 운영비의 85%를 지원했을 정도로 명실상부한 주립대학이었다. 지금은 주정부 부담이 45%에 불과하다. 학생이 9,000달러, 주정부가 7,000달러를 낸다. 머지않아(2년 내에) 학생부담은 1만1,500달러로 더 늘고, 주정부 지원금은 4,500달러로 더 줄어들게 된다. 영락없는 우골탑이다.
대학 등록금이 치솟으면서 빚진 학생들이 양산됐다. 전국 대학 및 대학원생들의 연방 정부 학비융자금 빚이 놀랍게도 전체 미국인들의 크레딧카드 빚보다 많다. 더군다나 연방 정부의 전체 학자금 융자 가운데 25%는 회수불능 상태다. 커뮤니티 칼리지 학생들의 채무불이행률은 그보다 더 높은 31%이다. 이들은 크레딧 기록이 망가지게 돼 졸업 후 차를 사거나, 아파트를 임대하거나, 심지어 취업하고 결혼하는 데까지 지장을 받게 된다.
당연히 ‘본전론’이 대두된다. 대학에 4년간(또는 그 이상) 등록금을 퍼부어봤자 본전도 건지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성공한 헤지펀드 전문가인 제임스 앨투처는 두 딸을 대학에 보내지 않고 여행과 비즈니스를 하도록 독려하겠단다. 그게 사람을 알고, 세상을 알고, 돈의 귀함을 알게 해주는 첩경이라고 했다. 대학은 그 뒤에 가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의 공교육을 공개석상에서 수차례 칭송한 건 잘 알려
진 일화이다. 지난해 마이클 드벨 시애틀 교육위원장도 한국은 고교생 졸업률이 98%로 세계 최고라며 70%에 불과한 시애틀교육구가 한국에 찾아가 배워 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의 한 친지는 커뮤니티 칼리지를 졸업한 아들을 한국 대학에 유학 보낼 계획이다. 그녀 역시 자녀 교육을 위해 이민 왔다고 말했었다. 세상 돌아가는 꼴이 어지럽다.
윤여춘
시애틀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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