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가 춤바람이 났는데도 남편은 좋아한다. 춤 때문에 살림도 건성이고 사무실도 비우기 일쑤인데도 “거 참 잘 되었다” 한다. 마누라 운동시키기가 큰 과제였는데 몇십년 만에 소원을 이루었다며 희희낙락이다.
중동 건설현장에 파견된 남편이 고생해서 벌어오는 돈을 함부로 쓰지 말라며 시어른들의 은근한 협박을 받은 기억이 있다. 춤바람이 난 가정주부들이 제비족에게 돈을 다 뺏겨서 가정이 풍비박산이 난 신문기사를 며느리인 내게 보여주시곤 했다. 신혼 때인 그 시절 학교 선생을 하고 있던 나는 춤바람이 날 시간도 없었을 뿐더러, 그런 아낙 취급을 당하는 것에 몹시 불쾌했었다.
그땐 가정파괴범이라 하여 해외 근로자 가정의 돈을 노리는 이에게 가중처벌법을 적용하던 시절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지나 그 염려하던 춤바람이 난 것이다. 돌아가신 시부모님이 아시면 기함할 일이 아닌가?
내가 하는 운동이라곤 ‘숨쉬기 운동’뿐이었다. 살아있는 인간이기에 저절로 숨을 마시고 내쉬는 것이지 정색을 하고 해야만 하는 운동이었다면 숨쉬기도 포기하였을 것이다. 나는 운동이 정말이지 싫다. 걷는다거나 뛴다거나 더군다나 춤을 춘다는 건 나의 삶에는 없는 단어였다.
관절이 멀쩡한 젊은 날에도 다리 쓰는 일은 하지 않았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머리를 쓰고 살아야지 몸을 혹사하는 건 머리가 부족한 사람들의 궁여지책이라 생각했다. 춤 잘 추는 사람 부럽지 않았고 평생 나이트나 디스코텍에도 간 적이 없다. 마라톤에 도전하는 사람들이나 매주 산을 타는 사람들을 보면 왜 고생을 사서 하는가 혀를 찼다.
얼마 전 후배와 점심 약속을 하였다. 망사로 된 층층이 치마에 타이즈를 입고 타조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 후배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라인댄스 클래스에 다녀오는 길이라나? 그녀는 삼 년째 라인댄스 삼매경에 빠져 있다고 한다. 요즘 주변 사람들을 보면 많은 이들이 라인댄스를 한다. 우리 교회의 성경공부 반에서도 성경공부를 하면 덤으로 라인댄스를 가르쳐 준다니 재미있다.
본의는 아니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라인댄스 그룹에 합류를 하였다. 몸치 중의 몸치인 나 때문에 라인이 엉키고 맥이 끊어지는 중이어서 종종 민망하다. 그래도 연세 많으신 언니들이 격려를 해주시니 적응이 되어간다. 눈치 보느라 게걸음에 뱁새눈이었던 것이 쉬운 두세 곡은 얼추 따라가는 중이다. 평균 연령이 70세인 이 그룹에 합류하길 퍽이나 잘 했다 싶다. 나의 관절 나이도 70대이니 말이다.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따라가 볼 것이다.
80세의 일본 할머니는 댄스 경력이 30년이라며 사뭇 의기양양하고, 70을 넘기신 댄스 선생님도 젊은이 못지않은 몸매와 열정으로 가르치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나의 클래스메이트들은 하나같이 군살 없는 노년으로 살랑살랑 사뿐 사뿐 스텝도 잘 밟는다. 나도 요즘 아이돌 그룹의 음악에 맞춰 댄스를 하다 보니 한결 젊어진 기분이 들기도 한다. 댄스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몸도 훨씬 가벼워지고 뒷마당 텃밭에도 자주 오르내리게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어디인가?
가만 보면 세상엔 참 아름다운 것이 많다. 경쾌한 발놀림, 노년의 건강한 웃음이 새롭게 보인다. 스텝이 있는 곳엔 치매도 없을 것이다. 춤바람으로 단련된 신바람 난 노인들의 모습을 통해 베이비부머 세대인 나의 노년을 상상한다.
나도 참한 쮸쮸(tutu)하나 주문해 두었다. 스텝이 안 되면 우선 옷으로라도 라인을 맞춰야겠기에.
이 정 아
<재미수필문학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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