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고기를 너무 자주 먹어 뚱보가 많아진 요즘엔 샐러드 같은 채소반찬이 ‘웰빙 식품’으로 뜬다. 하지만 40~50년 전만해도 고깃국은 생일날에나(그것도 운이 좋아야) 얻어먹는 ‘보신탕’이었다. 특히, 서울에서 하숙생활 하는 시골출신 학생들은 식탁이 허구한 날 ‘그린 필드’라며 푸념하기 일쑤였다.
된장국 아니면 콩나물국에 김치, 깍두기 등 소채일색이었던 우리네 식탁에 ‘그린 필드’라는 시적 은유가 붙은 것은 60년대 초 세계를 풍미했던 미국팝송 ‘그린 필즈(Green Fields)’ 때문이다. 지금도 대부분의 중장년 한인들은 4중창단 ‘브러더스 포(Brothers Four)’가 히트시킨 이 노래를 곧잘 흥얼거린다.
“햇살이 입맞춤 하는 푸른 초원이 있었네/ 계곡엔 강물이 유유히 흘러갔고/ 파란 하늘 높이 하얀 구름조각들이 두둥실 떴었지/ 이들 모두 영원히 이어질 사랑의 부분들이었네/ 그 초원을 지나며 거닐던 우리는 연인이었소.../ 아직도 나는 그대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다오/ 그대는 그 초원과 내게로 다시 돌아오기 전에는 행복해질 수 없다네/
통기타 반주에 네 사람의 화음이 완벽한 이 노래를 처음 듣고 시쳇말로 뿅 갔다. ‘노란 셔츠의 사나이’(한명숙), ‘하숙생’(최희준), ‘동백 아가씨’(이미자) 등 한국가요에 익숙해 있던 필자의 귀엔 일대 센세이션이었다. 그 무렵 ‘국산’ 4중창단으로 인기를 끌었던 ‘블루벨스’나 ‘봉봉’과도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흐른 지금 필자는 브러더스 포의 고향에서 살고 있다. 시애틀의 대학생그룹인 브러더스 포는 타코마의 건축인부들이 만든 4인조 기타 밴드 ‘벤처스’와 함께 60년대 초 워싱턴주가 배출한 세계적 음악그룹이다. 그 후 천재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와 록 그룹 ‘닐바나’도 시애틀에서 탄생했다.
한국전쟁도 끝나 미국이 태평성대였던 지난 1956년 UW에 입학한 봅 플릭, 존 페인, 마이크 커클랜드 및 딕 폴리는 거의 매일 밤 열리는 기숙사 파티에서 통기타 반주로 노래를 부르며 자연스럽게 4인조 그룹을 결성했다. 이들은 그 후 각종 학교행사마다 초청돼 기량을 발휘하며 UW의 스타밴드로 떠올랐다.
이들은 1958년 시애틀 다운타운의 ‘콜로니’ 클럽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이듬해 무작정 샌프란시스코로 내려갔다. 당시 신인들의 등용문이었던 ‘헝그리 아이’ 클럽에 쉽게 취업한 이들은 월급대신 공짜 맥주를 마시며 노래를 불렀다. 거기서 운 좋게도 모트 루이스(전설적 재즈 피아니스트 데이브 브루벡의 매니저)의 눈에 띄어 콜럼비아 레코드사에 추천됐고, 그해 첫 앨범인 ‘더 브러더스 포’가 나오면서 출세길이 열렸다.
다음해 싱글판 ‘그린 필즈’로 스타덤에 오른 이들은 존 웨인 주연의 ‘알라모’ 주제곡 ‘여름날의 푸른 잎’을 불러 1961년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 후에도 ‘이 땅은 너의 땅,’ ‘노란 새,’ ‘기억해보세요,’ ‘내게 망치가 있다면’ 등 히트곡을 연달아 냈고, 전국 대학을 순례하며 야간공연을 연간 250~300회나 가졌다.
그 브러더스 포가 오늘저녁 7시 시애틀의 발라드 고교 강당에서 데뷔 50주년 기념공연을 갖는다. 발라드고교는 유일하게 남은 창단멤버인 플릭의 모교로 이들은 전에도 세 차례 발라드고교 밴드부를 위한 모금공연을 가졌었다.
오늘 브러더스 포의 귀향공연을 직접 참관할 한인팬들은 많지 않을 것 같다. 필자는 주말등반 길에 CD로나마 ‘그린 필즈’를 들으며 푸른 초원을 거닐어 볼 참이다.
윤여춘(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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