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클린턴 장관이 한국전쟁기념관을 구경하고 차에 오르는 순간 미국 청년과 젊은 여성들이 몰려와 “We love you”라고 외쳤다. 이들은 국무부 외교관 양성 후원 프로그램으로 한국을 배우고 있는 미국 유학생들이었다. 이날 저녁 청와대에서 열린 만찬 환영인사에서 클린턴 국무장관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30년 후에는 오늘 내가 전쟁기념관에서 만난 미국 젊은이들 중에서 주한 미국대사가 탄생하기를 바란다”고 재치 있는 조크를 했다. 앞으로는 한국을 연구하고 공부한 사람들이 주한미 대사가 되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30년 후가 아니라 1년도 못돼 LA 한인사회 출신 1.5세인 성 김이 주한 미대사에 임명 되었다. 이는 미국 외교의 대전환이며 한국을 미국의 동반자로 대우하겠다는 의사표시이기도 하다. 한미관계에서 미국이 군림하지 않고 친구가 되겠다는 제스처라고도 볼 수 있다.
사실 주한 미대사의 영향력은 막강해 한때 미국정부가 파견한 총독이라는 비난을 받은 적도 있었다. 왜냐하면 과거에는 미국이 한국에 군사원조 뿐만 아니라 경제원조 특히 식량 원조를 해왔기 때문에 한국정계의 숨통을 쥐고 있었다.
그 좋은 예가 매카나기 주한 미대사의 이승만 대통령 하야 권고다. 이승만 대통
령이 하야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을 때 매카나기 대사가 강력하게 하야를 권고한 것이 이 대통령의 결심을 굳힌 결정적인 동기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대로 5.16 쿠데타의 경우 사무엘 버거 대사는 박정희 장군이 반공친미파라는 이유로 그의 독재를 눈감아 주는 자세를 취했다.
또한 이후락의 김대중 납치사건 때는 당시 미국 CIA 한국지부장인 도널드 그레그와 하비브 대사가 한국정부에 강력히 항의한 것으로 알려져 ‘김대중 구출의 은인’으로 불리게 되었다 후일(1989년) 주한 미대사가 된 그레그는 당시 한국 중앙정보부 주일공사인 성 김 대사의 아버지 김재권 공사와 매우 가까운 사이였으며 김 공사 가족의 미국이민을 간접적으로 도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한 미대사는 한국 현대사의 산증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고비 때마다 중대한 역할을 했다. 아마 이들 모두가 회고록을 낸다면 흥미진진한 한국현대사의 비사가 될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는 반미감정이 일어나 주한 미대사들이 적지 않은 고통을 겪었으며 부시대통령은 버시바우와 같은 보수 강경파를 주한 미대사로 내보내 극도로 긴장된 한미관계에 조금도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러다가 지한파이며 한국평화봉사단 출신인 여성 외교관 캐슬린 스티븐스가 버시바우 후임으로 임명된 것이다. 실패 연속의 부시 인사 중 가장 성공적인 예로 꼽힐 수 있으며 미국외교가 바람보다는 햇빛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입증한 케이스다.
스티븐스 대사의 한국이름은 ‘심은경’이다. 그는 ‘나의 이름은 심은경입니다‘라는 자서전을 내기도 했으며 지금까지 부임한 주한 미국대사 중에 가장 한국문화를 이해하는 외교관으로 꼽혀 2009년 한미우호상을 수상했다. 온 몸으로 코리아를 사랑한 외교관이다. 스티븐스 대사는 지난 5월5일 숙명여대 개교 100주년 기념식 연사로 초빙된 자리에서 영어로 연설하는 것에 대해 양해를 구했지만 양국문제에 이르자 또렷한 한국말로 “한미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튼튼하다고 생각 합니다”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그는 8월에 한국을 떠난다.
스티븐스는 남성 외교관이 할 수 없는 여성외교관만의 섬세하고 친밀한 외교의 시범을 보여 한미관계에 새로운 장을 열어 놓았으며 영원한 ‘한국인의 친구’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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