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늘 밟고 살았던 흙도 다시 만져보고 싶었고, 그날은 바닷물의 출렁임도 춤추는 듯 보였다. 40년간 흘린 뜨거운 피가 엉긴 감격스런 날, 우리 함께 지켜 나가자…중장년층 한인들은 이런 내용의 노래를 예전에 많이 불렀을 듯싶다. 광복절 노래다.
광복절 노래도, 삼일절 노래도 민족의 대동단결을 강조한다. “다 같이 복을 심어 잘 가꿔 길러 하늘 닿게…길이길이 지키세…힘써 힘써 나가세…”라는 구절이 그렇고,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동포야 이 날을 길이 빛내자”라는 구절이 그렇다.
그런데, 한인사회에선 광복절과 삼일절이 단결보다 분열을 조장해왔다. 시애틀한인회 따로, 타코마한인회 따로 기념식을 갖기 일쑤였다. 한 시간 정도의 거리문제는 표면적 이유일 뿐 실제로는 두 한인회간의 주최권 명분 싸움이었다. 한국의 국경일 기념식을 꼭 한인회가 주최하라는 법도 없다. 권위주의적이요 본국 지향적 단체라는 오해만 받는다.
백년하청일 것 같던 두 한인회의 개별 기념식이 올해로 종지부를 찍을 전망이다. 송영완 총영사가 두 한인회장을 포함한 주요 단체장들을 설득해 통합개최 합의를 도출해냈기 때문이다. 송 총영사는 부임 직후부터 “대통령이 기념사를 발표하는 한국의 5대 국경일 행사는 대한민국 정부가 주관하고 해외에서는 재외공관이 주관하게 돼 있다”며 기념식 분산 개최는 “무슨 일이 있어도” (공관장 권한으로) 막겠다는 뜻을 강하게 비쳐왔었다.
송 총영사가 주재한 지난 1일의 단체장 모임에서 ‘향후 2년간’ 광복절 기념식은 타코마한인회가, 삼일절 기념식은 시애틀한인회가 각각 통합 개최하기로 결정됐다. 올해 동포사회의 제 66주년 광복절 경축식은 15일 오전 10시 페더럴웨이의 코앰TV 공개홀에서 타코마한인회가 주최하되 장소 임대료 등 경비 일부를 총영사관이 부담하기로 했다.
송 총영사가 붙인 ‘향후 2년간’이라는 단서가 처음엔 아리송했지만 이내 속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지난달 그로부터 들은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송 총영사는 필자에게 “시애틀 임기 중에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고 운을 뗀 뒤 “아직 공개할 단계는 아니지만, 총영사관 자체 건물을 마련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시애틀의 부동산 가격이 바닥으로 떨어진 지금이야말로 자체 공관건물을 마련할 최상의 적기라고 지적하고 자신의 꿈이 전혀 허황된 것이 아니라 “이미 그 꿈이 10% 정도는 진척됐다고 봐도 좋다”며 활짝 웃었다.
송 총영사의 머릿속에 있는 공관건물의 조건은 우선 워싱턴주 심장부인 시애틀 다운타운에 위치해야 하며 ‘반드시’ 소규모 강당을 겸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서 단체장 모임도 갖고 전시회, 연주회, 교양강좌 등 문화예술 행사도 열고 싶다고 했다. 총영사가 말은 안 했지만 광복절? 삼일절 기념식도 그 강당에서 열면 자동적으로, 또 영구적으로 통합개최가 이뤄지게 된다. 송 총영사의 ‘향후 2년간’ 단서는 자체 공관건물을 2년 안에 마련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일 수 있고, 따라서 구체적 계획이 곧 공표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애틀 총영사관의 자체건물 구입은 역대 어느 총영사도 손대지 못한 만시지탄의 숙원사업이다. 1977년 11월10일 입주한 후 지금까지 34년째 세들어 있는 현재의 다운타운 공관은 일방통행 도로들이 얽혀 찾아가기 쉽지 않고, 주차가 불편하며, 11층 꼭대기의 사무실도 비좁아 그동안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대한민국의 위상에 걸맞지 않는다.
송 총영사는 부임하자마자 한국과 워싱턴주간의 운전면허 교차통용 합의를 일궈내는 홈런을 날려 박수갈채를 받았다. 해마다 두 한인회가 따로 개최하는 국경일 기념식에 달려가 똑같은 대통령 치사를 두 번씩 낭독한 전임 총영사들의 해묵은 고역을 송 총영사는 일거에 폐지했다. 그의 패기와 추진력을 감안하면 자체 공관건물 마련이 그의 말대로 꿈이 아닐 수 있으며, 그런 꿈이라면 한인사회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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