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미스USA로 뽑힌 앨리사 캄파넬라는 자신을 역사와 과학 긱(geek)으로 소개했다. 사회자가 ‘주로 보는 역사 책에 대해 말해보라’고 하자 “나는 영국의 튜터와 스튜어트 시대에 흠취해 있고, 반스 & 노블 서점에 가면 역사 코너에서 나를 찾을 수 있다”고 대답했다.
최근 인터뷰에서 한국 4인조 여성 그룹 2NE1은 자신들의 평소 모습은 무대에서와는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리더 씨엘은 “공연장 밖에서 우리는 너드(nerd)입니다. 모임에 가면 어울리지 못해 분위기를 깨는 스타일 이지요”라고 고백했다.
긱과 너드의 공통점은 어떤 일에 집착에 가까운 관심과 열정을 갖는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긱은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편이지만 너드는 조용히 나홀로를 고집하는 편이다. 예전에는 감성지수(EQ)가 낮아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을 경멸하는 말이었지만 요즘에는 테크놀로지ㆍ과학ㆍ수학을 비롯한 어느 특정 분야에 빠져 탁월성을 보이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으로 의미가 바뀌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멍청하고 따분한 사람(너드)’‘바보, 미치광이(긱)’라는 어원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 예로 인디애나 주에 있는 드포 대학의 ‘델타제타’여학생 사교클럽 (sorority)에서 일부 멤버들이 쫓겨난 사건이 있었다. 흑인ㆍ베트남ㆍ한인 그리고 비만 학생이 퇴출되고, 남학생들에게 인기있는 여학생 12명만 남았다. 그 후 “멤버들의 사회성 부족으로 인기없는 사교클럽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논란이 되자 대학이 조사에 나섰다.
밝혀진 불편한 진실은 쫓겨난 학생 모두가 도서관과 연구실에 파묻혀 사는 공부벌레, 즉 너드라는 이유였다. 디지털 혁명이 일어난 80년대 이후 빌 게이츠ㆍ래리 페이지ㆍ서지 브린 같은 긱과 너드들의 대거 등장으로 사회 인식이 바뀌고 있다지만, 산업혁명이 낳은 대량생산ㆍ대량소비ㆍ대량교육을 통한 군거본능ㆍ집단순응의 패러다임 찌꺼기는 여전히 남아있다.
그러나 지금은 긱과 너드에 대한 재조명이 절실하다. S&P가 내린 신용등급 하락의 굴욕을 겪고 있는 미국 경제를 재생시키려먼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데이빗 웨젤이 월스트리트저널 컬럼에서 역설했다. 로비를 이용해 금융과 헬스케어 분야를 불균형하게 키워온 의회를 꼬집으며, 그 두 분야에 쏟은 돈을 과학ㆍ컴퓨터ㆍ공학을 중심으로 한 생산성 있는 분야에 투자하였더라면 오늘과 같은 지경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긱과 너드를 정책적으로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미 2005년에 그와 비슷한 지적이 있었다. ‘과학공학 정책 위원회’가 “미국 교육이 현재의 교육 정책과 방법을 고수하다가는 글로벌 경쟁력이 약해져 경제강국 자리에서 물러나게 될 것이다”고 경고했다. 그 당시 위원회는 “AP 수학ㆍ과학 시험을 치르는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자”고 예방책으로 제안했다. 위원회가 한가지 간과한 것은 경제적 인센티브만 제시한 것에 그치고 사회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다. 초ㆍ중학교 과정을 거치며 “수학ㆍ과학을 잘하면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없다”라고 세뇌가 되었는데 장학금 100달러로 유혹한다고 효과가 있을까.
스포츠 관련 전공을 하는 학생수가 전기공학을 하는 숫자보다 더 많은 현실에서 대중의 시각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운전벨트 착용하지 않으면 죽는다. 흡연은 건강을 해친다”같은 캠페인은 벨트 착용 운전자를 늘리고 흡연자를 줄이는데 성공했다. 긱과 너드에 대한 인식을 쇄신하려면 그 비결부터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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