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쯤 전 한국에서 ‘들장미’라는 독일 영화가 상영됐었다. 비엔나 소년합창단의 입단 오디션에서 ‘들장미’를 부른 주인공 고아소년의 청아한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게 귓전을 맴돈다. 괴테의 시에 하인리히 베르너가 곡을 붙인 이 노래는 그 후 한국에서 크게 떴지만 막상 독일에선 그때나 지금이나 거의 불리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 주인공 소년도 가사를 까먹어 2절은 복도에서 엿듣던 단원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와 합창으로 불렀다. 한국어 가사는 “웬 아이가 보았네/ 들에 핀 장미화/ 갓 피어난 어여쁜/ 그 향기에 탐나서/ 정신잃고 보네/ 장미화야, 장미화/ 들에 핀 장미화…”로 이어진다. 똑같은 괴테 시에 곡을 붙인 슈베르트와 브람스의 ‘들장미’도 널리 애창된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원조 격인 ‘보리수’에 이어 1957년에 제작된 ‘들장미’는 거장 알투로 토스카니니가 ‘천사의 소리’라고 극찬한 비엔나 소년합창단을 한국 음악(영화)팬들에게 소개하는 계기가 됐다. 슈베르트가 단원(보이 소프라노)이었고, 모차르트가 주일 미사합창 지휘자였으며, 17세 베토벤이 피아노 반주자였던 500여년 전통의 이 합창단은 2000년대 들어 여러 차례 한국 방문공연을 가져 한국 팬들과 매우 친숙해졌다.
오스트리아 황제 막시밀리언 1세의 지시에 따라 1498년 궁정성당의 성가대로 출발한 이 합창단은 1918년 왕정붕괴와 함께 소멸됐다가 6년후 요제프 슈니트 신부에 의해 소규모로 재 창단됐다. 이때부터 단원들에게 해군(sailor) 유니폼인 ‘세라 복’을 입혔다. 세일러 유니폼은 오스트리아의 양가집 소년들이 주일 미사에 참석할 때 입는 복장이었다.
합창단은 1948년 오스트리아 정부가 제공한 아우가르덴 왕궁(영화 ‘들장미’의 무대)에 설립된 기숙사 학교에서 사관학교 식의 엄격한 규율 속에 음악을 공부한다. 7~15세 소년들로 4개 합창단(각각 21~25명)이 구성돼 있다. 이들 중 한 팀은 국내에 머물러 있고 3개 팀이 세계 각국을 순회연주하며 음악학교 및 합창단 운영비를 벌어들인다.
영화 ‘들장미’가 나온 직후인 1960년 한국에서 ‘선명회 어린이합창단’이 탄생했다. 들장미 영화의 비엔나 소년합창단엔 고아단원이 단 한명이지만 선명회 합창단은 당시 단원들이 모두 고아였다. 한국전쟁의 난민들을 돕기 위해 한경직 목사와 밥 피어스 선교사가 비영리 기독교 국제구호기관으로 설립한 ‘월드비전’(한국명 선명회)이 그 모체였다.
비엔나 소년합창단과 달리 남녀혼성인 선명회 합창단은 지난 40여년간 국내외에서 4,800여회의 공연을 기록했다. 미국의 카네기홀, 캐나다의 로이 톰슨 홀, 호주의 오페라하우스, 비엔나의 국립 오페라극장 등 세계 최고권위의 무대에서 공연하며 ‘천사의 노래’ ‘천상의 메아리’ ‘수정같이 맑은 소리’ 등 비엔나 소년합창단 못지않는 찬사를 듣고 있다. 1978년엔 영국 BBC 방송이 주최한 국제 합창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선명회합창단 발족 2년 뒤인 1962년 한국에 또 다른 어린이 합창단이 등장했다. ‘리틀 엔젤스’다. 통일교(교주 문선명) 산하단체인 ‘리틀 엔젤스’를 선명회합창단과 혼동하는 사람이 많다. ‘선명’이라는 이름과 ‘천사의 목소리’를 연상케 하는 ‘리틀 엔젤스’라는 단체명 때문이다. 노래뿐 아니라 한국 전통무용을 선보이는 공연형식까지도 똑같다.
지난 주말 선명회 합창단이 시애틀에서 두 차례 공연을 가졌다. 서부 13개 도시 투어의 첫 무대였다. 이들의 공연을 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지구촌의 굶주리는 아이들을 돕고 ‘소리 낼 수 없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되겠다’는 공연취지 때문이 아니다. 이들의 순수한 음색과 절제된 가창법이 만들어내는 ‘천사의 화음’에 크게 감동했기 때문이다.
시애틀 한인사회에도 ‘뉴 어린이 합창단’이 있었지만 아깝게도 서너 차례 공연을 가진 후 활동을 중단했다. 이들도 관심과 지원을 충분히 받았더라면 ‘천상의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있었다. 한민족 자녀들은 누구나 타고난 재능과 끼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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