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방랑시절, 산호세 정원사에서 법문 해주고 잠시 식객이 되어 있을 때, 아침이면 불자님들이 몇 분 기도에 참석하기 위해 온다. 기도는 정윤 주지스님께서 하시기에 법당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나는 아침에 법당에 기도하러 들어가는 불자님들에게 “기도 열심히 하십시오. 나오실 때는 죽을 맛있게 끓여 드리겠습니다.”하니 “에이! 죽을! 저는 죽을 안 먹습니다.”하며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시며 법당으로 들어갔다.
나는 어릴 때부터 절에 들어와 공양주도 해보고, 채공菜供도 해봤으며, 큰스님들을 시봉侍奉도 해봤고, 강원시절에는 환자를 돌보는 간병看病도 해봤으니, 음식을 해 먹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단 내게는 항상 부처가 되어야하겠다는 화두일념에 푹 빠져 밥 때를 잊어버리기도 하고, 잠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면 자연 음식을 잘 챙겨먹는 것보다는 소홀하게 된다. 그러나 누구를 대접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백사百事를 재치고 열심히 정성을 기울여 준비한다.
내가 속리산 복천암에 있을 때, 갑자기 30여명의 불자들이 몰려와 하룻밤을 자고 가게 되었는데, 주지스님은 부엌에 반찬이 준비되었는지 안되었는지도 모르고, 아침밥을 해주신다고 덜컥 받아놓았다. 그 당시 나는 채공을 맡고 있는데 걱정이 태산 같았다. 저녁 예불을 모시고 걱정이 되어 방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부엌에 들어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서 아침상을 보나하고 고민에 빠졌다. 그 때 절에는 무와 배추밖에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것으로 반찬을 이것저것 만드는 수밖에......’ 밤새 잠도 안자고 무와 배추로 여러 가지 반찬을 하여 아침상을 그럴듯하게 차려 드린 일이 있다. 옛말에 “무우 하나로 열 두 가지 반찬을 만든다”하는 것을 실행에 옮겨본 것이다. 나로서는 참으로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아침기도에 참여한 불자들이 법당에서 나오면 바로 공양을 할 수 있게 준비를 했다. 준비가 다 될 무렵, 법당기도 끝남과 동시 주지스님과 불자님들이 나오는데 상에 앉기도 전에 아주 먹음직스럽다하며 모두 자리에 앉는다. “불자님들께서 기도 열심히 하시라고 제가 죽을 끓인 것입니다. 많이 드십시오!”하니 일제히 수저를 들었다. 아침기도에 올라갈 때 죽을 안 먹는다는 불자도 함께 먹었다. 내가 옆에서 보니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군침이 입에서 돌 정도였다. 그 불자가 하는 말 “내가 이날 평생 이렇게 맛있는 죽을 처음 먹어 보았습니다. 한 그릇 더 먹겠습니다”하여 한바탕 절이 떠나가도록 웃은 일이 있다.
세상 모든 일은 정성이 아니던가. 무엇이든 정성 들여 하면 그 맛이 보통음식과는 다른 것이다. 정윤스님도 도토리묵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내가 직접 묵을 쑤어 식힌 다음, 묵을 채로 쳐서 가진 양념을 해서 주니 “도토리묵을 이렇게 맛있게 먹어보기 처음” 이라며 시간만 나면 나보고 도토리묵을 만들어 먹자고 한다. 아마 지금도 그 때 함께 살던 기억을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화엄사에 있으면서도 불자님들에게 말씀드린다. “불자님들께서 내가 하는 염불이나 법문 등을 하신다면 내가 공양을 해드리겠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 화엄사 불자님들은 나보다 훨씬 음식을 잘하시기에 오는 사람마다 칭찬이 자자하다.
Oct 10. 2011
대한불교 조계종 미주 필라 황매산 화엄사
주지 주훤 법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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