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진료비를 현금으로 지불하면 보험을 사용하는 것보다 본인 부담이 줄어들기도 한다.
남가주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조 앤 스나이더(57)는 최근 롱비치의 한 병원에서 대장수술을 받은 후 복부와 골반 부위를 단층 촬영했다. 몇 주 뒤 병원이 보내온 고지서에는 CT 스캔 비용으로 6,707달러가 찍혀 있었다. 하지만 가주 블루쉴드 의료보험을 갖고 있던 스나이더가 자신의 주머니에서 직접 지불해야 하는 액수는 2,336달러. 이 정도면 누구든 의료보험 덕을 톡톡히 본 셈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스나이더는 병원으로부터‘현찰 할인가’를 적용받을 경우 그녀가 부담해야 하는 액수가 1,054달러로 내려간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
CT촬영 보험적용 2336달러, 현금지불 땐 1054달러
혈액검사비 보험 415달러, 현찰 흥정가격은 95달러
직장인들 “경우에 따라 무보험인척 하는게 돈 절약”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그녀는 보험사인 블루쉴드를 향해 분통을 터뜨렸다. 환자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빡세게 병원 측과 협상을 벌여야 할 보험사가 일종의 배임행위를 한 게 아니냐는 생각에서였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모르는 일이지만, 많은 병원들과 의료인들은 현금으로 진료비를 계산하는 환자들에게 그들의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화끈한 할인혜택을 제공한다.
물론 전혀 보험을 사용하지 않아야 최저가격을 얻을 수 있다. 스나이더와 같은 사람들의 화를 돋우는 대목이기도 하다.
병원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적지 않은 프리미엄과 디덕터블을 감수해 가며 보험을 구입했는데, 무보험자거나 보험이 없다고 잡아떼어야 자신의 주머니에서 나가는 실제 경비를 절감할 수 있다니 속이 터질 법도 하다.
가격 차이에 어안이 벙벙할 정도다. 예를 들어 로스알라미토스 메디칼 센터가 주정부의 웹사이트에 고시한 복부 CT 스캔 경비는 4,423달러였고 블루쉴드가 병원과 흥정을 거쳐 끌어낸 비용은 그 절반 정도인 2,400달러였다. 그러나 LA타임스의 요청에 따라 병원 측이 공개한 현찰 할인가격은 250달러에 불과했다.
혹시 이런 엄청난 가격차가 로스 알리미토스에 국한된 것이 아닌가 싶겠지만 LA타임스가 남가주 전역의 7개 병원을 접촉해 본 결과 복부 CT 스캔의 ‘보험가’와 ‘현찰 할인가’ 차이는 비슷비슷했다.
그렇다고 보험이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보험을 갖고 있으면 ‘예방적 치료’의 경우 본인 부담이 전혀 없다. 게다가 보험이 없는 상태에서 ‘큰 병’에 걸리기라도 하면 ‘의료비 파산’을 피하기 힘들다.
하지만 의료비가 계속 늘어나면서 고용주들이 직장보험 커버리지를 축소하고 디덕터블이 더 높은 플랜을 밀어붙이자 화끈한 할인혜택이 주어지는 현찰 박치기에 매력을 느끼는 직장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금은 ‘현찰 박치기’로 수백 가지에 달하는 일반적인 외래환자 서비스와 검사를 파격적 할인가격에 받을 수 있다.
알라메다의 내과의 데이빗 벨크는 자신이 만든 웹사이트에 의료 경비에 관한 정보를 게재하고 커뮤니티 그룹을 모아 이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가 최근 웹사이트에 올린 글에는 혈액검사 비용 차이가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예컨대 한 로컬 병원이 제시한 고지서상의 ‘액면가’는 782달러였고 할인을 거친 금액은 415달러였다. 그러면 현찰가는 얼마였을까. 보험가의 4분의 1에 불과한 95달러였다.
앞서 말했듯 현찰 할인혜택을 받으려면 보험이 있다는 사실을 밝히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도 ‘허당’이 있다. 이 경우 환자가 지급하는 현찰은 보험의 자기부담 한도액으로 가산되지 않는다.
일정 한도액을 본인부담으로 채울 경우, 다시 말해 디덕터블을 모두 소진했을 경우 그 이후의 진료비는 몽땅 보험사 몫으로 떨어진다.
보험 가입자들은 자신의 몸 상태와 디덕터블 한도액 등을 꼼꼼히 계산해 현찰할인 서비스를 받는 편이 유리한지, 아니면 보험적용을 받을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병원이 현금 디스카운트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들은 빈털터리 무보험자들에게 가장 높은 요율의 진료비를 부과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더구나 무보험자들에게 진료비를 받아내기 위해 컬렉션 에이전트 뺨칠 만큼 극성스런 채권 추심에 나서 인술을 중시하는 ‘히포크라테스’ 집단이 아니라 ‘위선’(히포크러시) 집단이라는 비아냥거림을 샀다.
비난 여론이 비등하자 보험이 없는 저소득층 환자들에게 병원이 부과할 수 있는 진료비에 한계를 두는 정부의 새로운 규정이 속속 생겨났다.
한편 병원들도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회수가 불확실한 추심을 피하기 위해 이제는 무보험자 환자들에게 ‘현찰 할인’을 이용할 것을 권장한다.
미국 병원들의 고지서는 요령부득이다. 샌타모니카 주민인 탐 와일드(51)의 케이스를 보면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간다.
그는 최근 LA카운티/USC 메디칼 센터로부터 2,500달러가 찍힌 고지서를 받아들었다. 하지만 도대체 그 비용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 내역이 전혀 적혀 있지 않았다. 항목별 진료 내역도, 가격도 없었다. ‘신규비용’이라는 표기 아래 청구 총액이 쓰여 있을 뿐이었다.
UCLA에서 ESL 강사로 일하는 와일드는 비정규직이었기에 직장 보험혜택을 받을 수 없다. 올해 초 자전거 사고로 오른쪽 어깨를 다친 그는 자신의 거처에서 멀찍이 떨어진 저소득층 진료기관 H. 클로드 허드슨 컴프리헨시브 헬스센터를 찾아갔다. 보험이 없으니 일반 병원을 찾아가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거기서 그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여섯 장의 X-레이를 찍었다. X-레이 사진을 판독한 의사는 “상태가 좋지 않다”며 LA카운티-USC 메디칼 센터에 가서 재검사를 받을 것을 권했다.
LA카운티-USC 메디칼 센터에서도 그는 6장의 X-레이 사진을 찍었다. 그곳의 의사는 50견이라는 진단을 내린 후 “문제 될 게 없고 달리 치료방법도 없으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문제가 있건 없건 병원 고지서는 수주일 후 어김없이 날아왔다.
저소득층 클리닉에서 찍은 6장의 X-레이 비용은 470달러. 이에 비해 카운티-USC는 1,995달러를 청구했다. 네 배가 넘는 차이다.
아주 이해가 안 되는 바도 아니다. 아무래도 저소득층 클리닉보다 LA카운티-USC 메디칼 센터의 고정비용이 훨씬 높을 것이다.
와일드는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X-레이는 어디건 다 마찬가지 아니냐며,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지 고지서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알 도리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지서에는 달랑 환자이름, 날짜, 명세(description), 양(quantity) 등 딱 네 개의 칸만이 떠 있을 뿐이었다. 두 장의 고지서가 똑 같았다.
그나마 날짜와 양은 빈 칸으로 남겨졌고 명세 항목에는 구체적인 치료 내역 대신 ‘신규 비용’이라는 단 두 단어가 적혀 있었다.
와일드는 “진료비 납부가 싫은 게 아니라 무슨 명목인지 정확히 알지도 못 한 채 돈을 내기 싫다”고 말했다. 그는 병원이 보험사에게도 이런 말도 안 되는 고지서를 보내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LA카운티 건강서비스국의 의료비 고지서 담당자인 래리 가튼은 저소득층 보험을 다루는 메디-캘이나 심지어 민간 보험사들도 구체적인 명세를 요구하는 법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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