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스카스데일 거주)
누구나 매일 하는 정해진 일이 없어지면 집안에서 중요도에 따라 알맞는 대접을 받게 된다. 이것이 은퇴한 남자가 마주치는 냉정한 현실이다. 그렇게 되면 살기 위하여는 먹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일주일도 필요치 않다. 내외는 같이 늙어 간다. 그리고 이제 은퇴했으니 오손도손 함께(?) 밥 해 먹고 재미있게 살자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첫 주부터 그렇지 않다는 것을 당장 알 수 있다. 그간 고생했다고 따뜻한 밥상이 아침부터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며칠 지나면 점심에 국수그릇을 치우고 돌아서면서 안 사람의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약간 가기 시작하는 귀로 놓친 말이 궁금하다. 그러니 항상 새 소식을 물어오는 안 사람의 무슨 새로운 소식이라도 놓칠까봐 목을 빼고 “뭐랬지?” “들었구나, 저녁에는 또 무엇을 먹나? 했지 뭐” 이렇게 당당하게 걱정하는 말을 며칠 듣고 나면, 죄진 일 없어도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하다. 아주 무쇠로 해박은 심장을 안 가진 다음에야 누구나 같은 심정일 줄 안다. 여자들은 나이들면 혼자 속으로 생각하는 말이 그냥 소리로 되어 밖으로 빠져나오는 모양이다.
남자들은 나이 따라 아프고, 떠나가고 친구들이 줄어져 가는 자연법칙에 따르는데 여자들은 왜 반대로 가는지 모르겠다. 이웃 친구다, 동창이다, 고향 친구 모임이다, 개띠 모임이다, 소띠 모임이다, 하고 말이다. 세일에는 출석이라도 부르는지, 손자 것이라고 사와도 취향 틀려 핀잔듣기 딱 알맞는데, 왜 꼭 가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새로 생긴 신기한 대형 한국 식품점에 가는 것이면 누가 뭐라나? 또 있다. 요즈음 젊은 부모들은 왜 그렇게 쉽게 “엄마, 내일 우리아이 좀 봐줘요” 이렇게 되는지 모르겠다. 그러면 제 아버지는 누가 돌보라는 말인가?
어떻든 제목이 생기면 벼락 같이 집을 나서면서 “먹을 것 냉장고에 해 놓았으니 찾아 잡수든지…” 말든지 아니면 외식 하란 말이겠지. 며칠 미역국에, 곰탕에 하고 있다 보니 집에 들어오는 안사람이 더 없이 반갑다. 그런데 돌아오자마자 목욕하고 옷 갈아입고 화장 싹 하고 나서면서 “저녁에 우리 고등학교 친구 모임이 있어서 잠깐 나갔다 올께” 한다. 우리 고등학교 다닐 때는 남녀 공학이 아니었다. 그러니 “나도 따라 가면 안 될까?”하는 말이 목젖까지 올라 왔다가 살아진다. 은퇴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바빠지는 다른 인생을 보면서 대해 같은 마음을 가진 남정네 가슴이지만 조금은 울적해 진다.
외식도 한두 번이지 혼자 입을 쭉쭉 다시다가 “그래, 어디가나 잘 나가는 주방장은 남자들이더라. 나도 한번 해 보지 뭐!” 이렇게 되어서 외식 좋아하지 않는 남정네의 정지깐(부엌) 출입이 시작된다. 처음은 냄비 찾아 라면부터 시작하자. 조금 진보하면 프라이 팬 내어 놓고 “계란 프라이를 해 먹을까? 김치 볶음밥을 해 먹을까?” 까지 장성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때부터 철저하지 못한 가정교육의 문제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우리 나이가 되면 교육은 기초가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정지 깐도 그렇다. 들여보내기 전에 강제로라도 설거지를 먼저 가르치는 것이 원칙이다. 왜 그런지, 도대체 무엇인가 했다하면 뒤끝이 깨끗하지 않는 것이 남정네들이다. 혼자 음식 해 먹는 것은 좋다. 그렇지만 집에 와서, 냄새나는 얼룩덜룩한 그릇과 안 씻은 프라이팬이 싱크대에 처 박혀 있는 것을 보고 여자가 유쾌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사람도 아니다.
은퇴한 남자가 살기 위하여는 정지깐 출입은 꼭 필요한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 못하면 혼자 밀려 난 듯한 고독감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이 고독감은 노인성? 우울증을 가져다 줄 것이다. 노년의 증가하는 자살율과 가출을 생각하면, 작은 불만들을 웃음으로 돌려보내는 미소가 우리에겐 필요하다. 외로움에 사무치지 말고, 불만하지 말고, 같이 사는 은퇴의 길을 생각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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