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수의 한국국민 쿠데타 받아들였다”
▶ 메그루더 유엔사령관, 5월17일 미 합참의장에 비밀전보
1961년 5.16 쿠데타 당시 박정희(오른쪽) 소장과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의 모습.
“권력자들 사전에 알고 있었고, 국민들도 크게 염려하지 않아”
미, “혁명위와 함께 노력할 것” 지시 사실상 쿠데타 성공 인정
주한미군이 1961년 5월16일 새벽 한국에서 박정희 한국 육군소장의 주도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자 즉시 한국 국민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실시해 대다수가 혁명에 찬성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린 사실이 미국 정부 비밀해제문서에서 확인됐다.
미국 국무부 역사가실(Office of Historian)의 ‘미국의 외교관계, 1961~1963년, 22편, 동북아시아’ 시리즈 문건 218호에 따르면 카터 매그루더 유엔군사령관은 5.16 군사 쿠데타가 발생한 하루 뒤인 1961년 5월17일 오전 11시40분 비밀(Secret) 전보로 리맨 렘닛저 미군 합참의장에게 이 같은 내용을 보고했다.
매그루더 사령관은 전보에서 “미군 방첩대(CIC)가 거리의 무심한 방관자들(casual bystanders)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질문 대상자들 평균 10명 중 4명이 반란(uprising)에 찬성하고, 2명이 찬성은 하지만 타이밍(timing)이 이르다, 그리고 4명이 반대한다는 입장이다"고 밝혔다.
매그루더 사령관은 또 “윤보선 대통령은 초기에 헌법에 대한 입발린 말(lip service)을 하면서도 자신의 정치적 상대인 장면(국무총리)을 제거하고 새로운 형태의 정부를 세우는데 있어 쿠데타(coup)를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며 “윤 대통령과 조지 백(백낙준) 참의원 의장 모두 군인들을 동원해 반란을 가라앉히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당시 정권을 쥐고 있던 장면 국무총리에 대해 “국무총리는 아직도 계속 숨어있으며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며 “그는 인격적으로 용감하다는 평판을 받아오지 못했던 사람이다”고 꼬집었다. 이외에도 장도영 육군 참모총장에 대해서는 “장도영은 자신을 (장면 내각정부에) 충성스럽다고 내세우지만 유혈사태를 피하기를 원해 (5.16 쿠데타에 대한) 단호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그가 두 얼굴(two faced)을 가진 사람이라는 여러 정황들이 있다”고 비난했다.
매그루더 사령관은 결론적으로 “(5.16 쿠데타 24시간 이후 상황을) 종합한다면 서울 정부 주변의 모든 권력자들은 쿠데타 계획에 대해 사전에 알고 있었는 듯하고 최소한 반대하지는 않았다”며 “국민은 찬성과 반대로 나눠져 있는 듯하지만 현재로서는 그 어떤 행동에 나설 만큼 상황을 충분히 염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매그루더 사령관의 전보는 렘닛저 합참의장 이외에 국무부와 태평양사령부에도 참고로 보내졌다.실제로 5.16 쿠데타가 발생한 당일 오후 7시52분 체스터 보울스 미 국무부 차관은 당시 제네바를 방문 중이던 딘 러스크 국무부 장관에게 띄운 비밀 전보(문건 215호)에서 마샬 그린 한국대사대행과 매그루더 사령관이 같은 날 정오께 윤 대통령을 약 3시간 동안 만난 사실을 알리며 그 자리에서 윤 대통령이 “장면 내각정부에 대한 대중의 불만과 실망이 사회에 널리 퍼져있다. 부패는 광범위하고 정부의 높은 곳까지 뻗쳐있다. 한국은 강력한 정부가 필요한데 장면은 그런 리더십을 발휘할 능력이 없음이 입증됐다”고 말했다며 “윤은 국회 내외에서의 지도자들을 포함한 초당파적인 국가 내각 설립을 통해서만 해결책이 나와야 한다고 믿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 같은 보고들을 바탕으로 미 국무부 워싱턴 D.C, 본부는 5월17일 오후 11시23분 주한미대사관에 비밀 전보(문건 219호)를 보내 만일 주한미대사관이 장면 내각정부가 구제할 수 없을 정도로 (irretrievable) 붕괴됐다고 판단할 경우 한미 양국이 상호신뢰 분위기에서 서로 협력해 나갈 수 있도록 가능한 정부가 속히 들어서도록 하는 시발점으로 대사관의 자유재량에 따라 혁명위원회(Revolutionary Committee)와 함께 노력하도록 지시해 사실상 5.16 쿠데타의 성공을 인정했다.
한편 미 국무부는 1961년 6월6일 존 F. 케네디 대통령에게 제출하기 위해 완성한 ‘태스크포스 보고서’(문건 225호)에서 한국에 대해 “이(승만) 정부와 장면 정부 모두가 전복한 근원은 한국 사회에서 떠오르고 있는 국가주의 힘(forces of nationalism)의 표현(expressions)이다”며 “이 두 사태는 모두 한국 사회에 방향과 발전이 없고 만연한 부패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불만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또 비록 5.16 쿠데타는 이뤄졌으나 “근본적인 경제 문제들은 그대로 남아있다”며 이를 ▲제한된 자원에서 인구가 급증하고 실업 상태가 매우 심각하다, ▲산업이 전력과 물 부족, 미숙한 경영과 자금 조달 어려움으로 부진하다, ▲농부들은 빚과 높은 이자율로 고생하고 있다, ▲부패가 고유하다로 꼽았다.케네디 대통령은 1961년 6월13일 백악관에서 열린 제485차 국가안보위원회회의(문건 229호)에서 5.16 쿠데타에 대해 “(한국에서) 정권을 잡은 사람들과 관계해야 하는 것 이외에 별다른 방안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같은 해 11월 케네디 대통령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해 한미 양국 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신용일 <기획취재 전문기자>
■ "UN.세계발전 위해 여성참여 확대돼야"
반기문 총장, 차세대 여성 글러벌 파트너십 세계대회 참석
<유엔본부=신용일 기자> 한국을 방문 중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13일 여성참여확대의 당위성을 강조했다.유엔 뉴스센터에 따르면 반 총장은 이날 한국에서 열린 차세대 여성 글로벌 파트너십 세계대회에서 참석자들에게 “의사결정과정에서 여성의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며 “여성의 참여 부족은 여성 개인뿐만 아니라 전체 국가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말했다.반 총장은 "우리를 더 나은 사회로 이끌 수 있도록 모든 영역에서 여성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면서 "성 차별은 발전을 저해하는 반면 양성 평등은 커다란 약진을 가능하게 한다"고 호소했다.
이날 ‘UN과 세계 발전을 위한 여성의 역할’이란 주제로 강연을 한 반 총장은 세계적 대기업 최고경영자, 대통령, 수상, 국회의원 중 여성의 비율이 지극히 낮다는 통계를 인용, 여성참여확대의 당위성을 강조했으며 아프리카 여성이 역할에 비해 받는 열악한 처우도 예를 들었다.반 또 총장은 유엔이 여성들에게 참여를 유도하고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데 앞장 설 것이라고 밝혔다.
반 총장은 이외에도 ‘밀레니엄개발목표’(MDGs)로 알려진 빈곤퇴치 운동과 관련 여성들의 권리와 요구 문제가 다뤄지지 않고서는 목적 달성이 이뤄질 수 없다며 여성들의 힘을 자유롭게 풀어 놓아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지난 주말 한국에 도착한 반 총장은 김황식 국무총리, 김성환 외교부장관, 유우익 통일부장관 등 한국 정부 관리들을 만나 한반도 안보, 시리아 사태, 해양 보존 등 광범위한 분야 문제들을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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