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갑헌 (맨체스터 대학 철학교수)
런던 올림픽이 끝났다. 올림픽을 보면서 승자가 패자를 위로하고 패자가 승자를 축하하는 더 없이 아름다운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부상을 입은 다리로 경기를 완주하던 미국 육상 선수, 두 다리를 잃고 의족으로 트랙을 달리던 남아프리카의 선수, 역기를 들어올리다 팔이 부러지던 한국의 선수를 보면서 과연 누가 올림픽의 진정한 승자인가를 생각했다.
미국이 예상을 넘어서는 선전으로 모든 메달에서 중국을 멀리 앞서 일등이 된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이 총 메달 수에서 이태리와 함께 9등, 금메달로는 5등에 올라선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한국의 위상이 국제적으로 높아진 것을 분명하게 전 세계에 보여주는 자랑스러움으로 아직도 가슴이 뿌듯하다. 한일축구 경기야 말 할 것도 없다. 박주영의 첫 골은 거친 축구가 어떻게 아름다움에 도달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일 것 이다. 그의 소위 ‘기도 세리머니’도 나에게는 더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였다. 두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고 자신의 성취를 축하하며 트랙을 도는 선수들의 자랑스러운 모습도 참 보기 좋았지만, 먼저 자신의 승리를 겸손하게 하나님께 돌리는 박주영 선수의 마음이 나에게는 더욱 감동적이었다. 겸손은 고금의 미덕이 아니던가.
그러나 이 번 올림픽에서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영웅은 이 승자들이 아니었다. 간발의 차이로 4위에 머문 무수한 5대양 육대주의 젊은이들이 바로 내 가슴을 뭉클하게 한 영웅들이었다. 4등에 기뻐서 울던 그들, 4등에 실망의 눈물을 흘리던 그들이야말로 올림픽이라는 인간 드라마의 참된 영웅이라고 생각했다. 한국 여자 핸드볼과 여자 배구팀의 경기를 외국 언론은 타이태닉 스트러글 (Titanic Struggle) 이라고 불렀다. 서양의 막강한 팀을 상대로 당당한 경기를 벌였던 이들은 간발의 차이로 모두 4등에 머물렀다. 아름다운 4등이었다. 일본과 노르웨이에 져서 실망스럽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실망의 날이 이들을 더 자라게 하는 최고의 날이 되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올림픽은 단지 경기의 우열을 가리는 장소만은 아니다. 경기의 승패와 함께 평화로운 세상을 이루겠다는 올림픽 정신을 전 세계가 보편적으로 나누는 축제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 이다. 한국 선수를 둘러싼 여러 잡음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심판의 실수로 일어난 경우와 선수들의 올림픽 정신에 대한 무지가 그 원인인 것을 알 수 있다. 심판도 사람이기에 실수 할 수 있다는 개연성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승리에 지나치게 집착하다보면 축제의 한 복판에 앉아 어린 아이처럼 엉엉 울고 있는 안쓰러운 모습을 전 세계에 보여주게 된다. 설사 경기에 이겼다고 하더라도 그 선수가 과연 ‘챔피언’의 인격을 가졌다고 생각 할 사람은 세계에 많지 않을 것이다.
‘독도’문제를 머리 위에 들고 섰던 선수도 올림픽의 진정한 정신이 무엇인지 몰랐다는 무지를 드러낸 것 외에 다른 변명이 있을 수 없다. 배드민턴의 경우는 한국 올림픽 역사 최악의 날이었다. 하기야 好事에 多魔라는 말도 있으니까…
4등을 한 선수들에게 한 번 더 박수를 보낸다. 정정당당하게 분투한 미국과 한국 그리고 세계의 모든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