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뜨거운 가슴 안고 오늘도 뜁니다”
▶ “언어보다 힘든것은 문화 이해시키기”
“아프리카 오지서 현장 경험 쌓고 싶어”
퀭한 눈에 까칠한 얼굴. 자유를 찾아 떠났던 먼 여행을 마친 그들의 얼굴에는 한숨과 안도감이 교차했다. 영어는 한마디도 못하고 도움만을 기다리는 간절한 눈빛, 내 눈 앞 그들은 난민이었다.
올 8월 미국으로 건너와‘국제난민구호기구’(International Rescue Committee)에서 봉사하는 한인 대학생 김신영(22‧한동대), 안효진(23‧덕성여대)씨가 처음 접한 난민들의 충격적인 모습이다.
난민 에슬딘 버니타(가명)씨 부부는 6명의 자녀를 거느리고 김씨를 찾아왔다.
8명의 대가족 가운데 그나마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큰 딸 하나 뿐 이지만 그마저도 제대로 되지 않아 의사소통은 거의 불가능한 상태.
김씨는 모든 것이 신기해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아이들, 보채는 막내 등 대가족을 거닐며 함께 버스 타고 장보기, 소셜 시큐리티 오피스 방문, 핸드폰 구매 등의 절차를 마친 후 그들의 집으로 갔지만 이번에는 전기와 개스가 작동하지 않는다.
PG&E사와 전화로 여러 번의 실갱이를 한 후 겨우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어느덧 퇴근 시간을 훌쩍 넘겨 주위는 이미 어둑어둑했다.
버니타 가족은 김씨를 바라보며‘땡큐’를 연발, 김씨는“다른 문제가 발생하면 전화 달라”는 말을 남기며 집으로 돌아간다.
난민들의 수호천사를 자청한 김신영씨와 안효진씨는 미국 IRC에서 이들의 원대한 꿈의 항해를 시작했다.
안씨는“중학교 재학 시절 필리핀에 캠프를 갔다가 그곳에서 아이를 내세워 구걸하는 여성을 목격했다”면서“순간 그 아이에게 꿈을 심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어 오늘날 난민을 돕는 일에 뛰어들게 됐다”고 동기를 설명했다.
김씨 또한 중학생 때 참여한 말레이시아 봉사 캠프를 통해 난민을 돕는 일이 자신의 소명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비영리 단체 IRC는 동남아, 중동, 유럽 등을 포함, 전 세계 42개, 미 전체 22개, 북가주에는 4개의 지사(OAK, SJ, SAC, 털락)를 두고 활발한 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다.
두 학생은 정부 프로그램 중 하나인‘한국 대학생 미국 인턴 교류 프로그램’(WEST)을 통해 IRC에 선발됐으며 올해 8월 20일부터 오클랜드 지사에서 본격적인 근무를 시작했다.
이들은 미국 정부 또는 UN산하기구에서 IRC에 보내는 난민들을 한 달에 20케이스 정도 전담해 그들의 생활 전면과 정부 지원 프로그램 연결 등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김씨는“지금까지 만나본 난민들은 보통 중동, 동남아, 아프리카 출신으로 개인 1명부터 부부, 많게는 8명에 이르는 대가족, 임산부 가족 등 그 크기와 종류가 다양하다”면서“난민이 미국에 도착하기 전 하우징, 침대 등을 포함한 생필품 준비와, 푸드 스탬프와 메디칼 신청 등을 돕고 있으며 회사를 통해 난민에게 4개월 동안의 기초 생활비를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씨는“보통 이곳에 온 난민들은 의사소통이 아예 되지 않을뿐더러 미국의 문화도 전혀 알지 못 하는 상태”라면서“버스 타는 법, 물건 사는 법 등 처음부터 끝까지 사소한 모든 것을 다 가르쳐 줘야한다”고 말했다.
난민 케이스마다 내용이 다양해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학교 입학, 노인의 경우 정부 차원의 재정 지원 프로그램, 청년의 경우 구직을 돕는 잡 트레이닝 프로그램과 연결시켜주는 등 경우에 따라 다른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쉴틈없이 일에 정열을 바치지만 김씨와 안씨가 받는 수급은 매달 한국정부로부터 들어오는 지원금 700달러가 전부인 실정이다.
안씨는“한 달 700달러는 기초생활수급권자보다 못한 금액이지만, 내게‘땡큐’를 연발하며 해맑게 웃어주는 난민들을 보면 세상을 다 얻은 느낌”이라면서“서로 말은 안 통해도 마음은 통한다”고 말했다.
일적인 고충에 대해 김씨는“가장 힘든 것은 난민들에게 미국의 문화를 이해시키는 부분이다”면서“미국의 일 처리 방식부터 모든 것을 난민들은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하지만 그들이 시간이 갈수록 긴장을 풀고 나를 믿어줄 때, 그 무엇보다도 큰 보람을 느낀 다”고 전했다.
이들은 앞으로도 난민 구제를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는 각오다.
안씨는“이곳에서의 일을 마친 후 아프리카 등의 오지로 가 현장 경험을 쌓고 싶다”면서“이보 다 더욱 긴박한 상황에 놓여있는 난민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김씨는“난민들은 열악한 교육 환경에 처해있다”면서“난민 교육 캠프를 설립해 그들을 교육하고, 궁극적으로는 도움을 받지 못하는 난민이 없도록 난민의 정의를 개혁하는 것이 목표다”고 포부를 밝혔다.
또한“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등 중동의 현장에서 직접적으로 난민들을 돕고 싶다”면서“목숨이 위험한 지역이라 부모님이나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하지만 처음 만난 난민의 절박했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김신영, 안효진씨는 인터뷰 말미에“우리의 생명과 맞바꿀 만큼 그들의 고통은 상상 이상의 처참함”이라며“모든 사람들이 같은 꿈을 꿀 수 있는 공평한 세상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권지애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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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난민구호기구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인 대학생 김신영(왼쪽)씨와 안효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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