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큰 선거가 끝나면서 여러 가지 충격을 일으켰다. 우선 롬니와 공화당이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가장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은 바로 미국 교회이다. 패배 정도가 아니라 사뭇 참패를 당했기 때문이다.
우선 기독교계는 이번 선거에서 별달리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아니, 기독교가 무기력한 ‘종이호랑이’라는 걸 여실히 폭로해준 선거였다. 과거에는 ‘도덕적 다수’ (Moral Majority) 등의 운동으로 복음주의 교회들만으로도 당락에 미치는 영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었다.
그런데 미국 복음주의의 대부라 할 수 있는 빌리 그래함 목사조차 별 수 없는 지도자로 평가되었으니 무얼 더 말하랴. 투표일을 얼마 앞두고 그래함 목사는 그를 방문한 롬니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그러나 그래함 목사도 기독교계도 결국 체면만 구기고 말았다.
반대로 기독교의 무력함은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으로 더욱 돋보이게 되었다. 동성결혼과 낙태는 주류 기독교가 결사반대하는 매우 민감한 이슈들이다. 그러나 그걸 찬성하고 나선 오바마가 승리했다. 게다가 메릴랜드 주와 메인 주에서는 동성결혼 합법화 주민발의가 통과되었고 위스콘신 주에서는 공개적인 동성애자가 보라는 듯이 상원의원에 당선되었다. 미국 역사상 최초란다. 이런 낭패가 어디 있는가.
기독교계의 몰몬교에 대한 이단정죄도 이제는 힘을 잃게 되었다. 1960년대 초 케네디가 대통령으로 출마했을 때 그는 가톨릭 신자로서는 최소의 대선 후보였고 마침내 닉슨을 근소한 차이로 이기고 당선되었다. 그 때에는 가톨릭 출신 대통령도 못마땅하게 여기던 때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독실한 몰몬교 신자가 대통령 당선권에 육박해 왔다.
‘끝날 성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긴 이름을 가진 이 종교는 교리가 기독교와 매우 다르고 또 성경 대신 몰몬경을 경전으로 사용하고 있다. 최근 통계로 교인 수는 350만 명 내외라고 한다. 기독교 인구에 비하여 아직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공화당 대통령 후보를 내었고 그래함 목사의 면죄부를 받았다.
이런 추세라면 몰몬교도보다 수가 더 많은 430만 명의 이슬람교에서도 미국 대통령후보가 나오지 못한다는 보장이 없다. 미국이 비록 정교분리의 나라이지만 이슬람은 정교일치 아니 교정일치를 근본교리로 하고 있다. 앞으로 미국에는 심각한 종교전쟁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도 든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기독교의 갈 방향은 무엇인가? 우선 새로운 전략 몇 가지를 생각해 보자. 먼저 기독교는 스스로 소수자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다음으로 기독교가 주장하는 교리를 정부의 정책이나 법률의 힘을 빌어 지나치게 강요하는 것은 지혜로운 전략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기독교는 하나님만 의지함으로써 영적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그리고 정복자적 자세로는 전도의 큰 열매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교회사적 결론이다. 따라서 동성결혼은 비성경적인 것으로 적극 반대하지만 그들의 인권은 보호되어야 한다는 입장에 서야 한다. 예수님은 그들의 영혼도 구원 받을 수 있도록 생명을 제물로 바치셨다. 전도에 있어서 햇볕정책을 강화하자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기독교의 절대 진리는 사수하되 상대적 진리에 근거하여 다른 종교와의 화목이나 공존을 깨뜨리는 일을 삼가야 하겠다. 앞으로 대통령은 꼭 기독교 신자여야 전도에 더 유익하다는 편견도 포기할 필요가 있다. 이제 미국 사회만 아니라 온 세계에서 자신과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관용적 개방정신이 높아가고 있다. 그것이 시대정신임을 이번 선거가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이런 상황을 똑바로 응시하고 순수한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미국 기독교인들은 더욱 매진해야 하겠다.
<이정근 목사 · 미주성결대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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