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화가 김홍도는 정조의 후광에 힘입어 단원풍속화첩을 그렸다. 스물다섯 첩의 그림은 당시의 시대상을 대담하고 풍자스럽게 그려내 230년 전의 생활상을 전해주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빨래터이다.
빨래는 그 시대에도 아낙들의 주된 업무였고 당시 문헌의 기록을 보면 모든 빨래는 대부분 앞서 전부를 해체하여 빤 후에 푸새를 하고 다리거나 다듬질을 한 후 다시 옷을 지어 만들었다 하니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안 되는 과중한 노동이었다. 아니 우리 윗시대만 생각해도 그렇다. 아이가 넷이고 유난히 객식구가 많았던 우리집의 큰 고무대야에는 늘 빨래가 가득 담겨 있었고 그 가운데 빨래판이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엄마의 하루는 빨래를 치대는 것으로 시작해서 개는 것으로 끝나셨던 것 같다.
그나마 아버지의 배려로 세탁기가 보급되기 시작한 1970년대 중반에 집에 세탁기가 들어왔고 다 돌아간 빨래를 세탁조에서 탈수조로 넣은 뒤 평행을 맞추어 둥근 고무를 끼워 탈수를 시키는 것이 마지막 과정이 되던 때가 있었다. 이런 빨래의 추억이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이젠 건조기까지 돌려 다 말려 나오니 이것도 일인가 싶기도 한데, 이것조차 시간이 없어 밀리는 것을 보면 한심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은, 며칠 밀린 빨래를 세탁기에서 꺼내 건조기를 외면하고 마당 한가운데에 옷걸이에 걸어 건조대와 그네 주변에 죽 널어 놓는 여유로움을 부려본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아침 햇살과 애교스러운 바람에 흔들리는 빨래를 보고 있노라면 어릴 적 마당에 나부끼던 빨래 생각이 나면서 그렇게 마음이 훈훈할 수가 없다. 빨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가족들이 열심히 살고 있다는 지표의 증거물이지 않을까? 커져만 가는 아들의 양말, 내 것보다 긴 딸의 바지를 널다 보면 그 건강함에 감사의 기도가 입가를 맴돌게 된다. 빨래 널면서 느껴지는 오늘 이 마음의 평화로움이 건조기를 포기한 수고로움에 대한 대가라고 하기보다는, 빨래를 미학적 가치로 승격시키는 우리 가족의 건강함이 눈부신 6월의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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