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랑에 관한 소설을 읽게 되었다. 문체에는 현대적인 감각이 넘쳤으나 남녀간의 사랑에 관한 여느 현대 소설들과 너무 다른 놀라운 그 무엇인가가 나를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것은 운명적인 사랑의 실체에 대한 주인공의 절대적이고 주저없는 믿음과 감정의 강렬함이었다. 주인공은 사랑에 대한 의심 한점 없는, 흠없는 신앙을 갖고 있었다. 사랑은 주인공에게 막강한 구속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이러한 사랑의 깊이, 지속성과 강렬함은 독자에게 이 희귀한 세계에 참여하여 사랑의 준엄한 절대성을 받아들일 것을 명한다. 그래야만 독서가 진행되는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작가의 정신과 혼융되는 온전한 독서를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아득한 상태에 빠졌다.
"Je le vis. Je rougis, je pâlis à sa vue" "나는 그를 보았다. 얼굴을 붉혔다. 그의 모습에 창백해졌다." 이는 17세기 라신느의 고전비극 ‘페드르’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다. 의붓아들 이뽈리뜨 왕자에 대한 왕비 페드르의 운명적인 사랑이 이 단순 과거형의 세문장으로 표현된다. 극작가 Arthur Miller의 설명처럼, 옛 고전적 비극의 귀족적 주인공의 특징은 이 절대성을 타협하지 못하는 데 있다. 마음을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 없는, 적당히 맞추고 굽히지 못하는 정신세계가 바로 고전적 비극의 주인공의 세계이다. 앞서 언급한 소설의 주인공은 바로 이러한 고전적 비극의 주인공이 소유한 감정적 진정성의 절대적 세계에 살고있음을 알 수 있다. 초기 낭만파적 감정 분출의 역동성과 섬세한 현대적 감수성으로 이 고전적 정신세계가 감춰져 있을 뿐이다.
물론 많은 현대소설에서 주인공들은 사랑에 빠지며 이 장면들은 충격적이고 빼어난 언어로 아름답게 묘사된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사랑의 절대적인 존엄성이나 그 존재의 두께, 막중한 무게가 결여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실체가 이미 욕망(desire), 정열(passion), 욕정(lust)으로 분해되어버린 세계, 남녀간의 사랑이란 영장류(primates) 고등동물의 뇌호르몬 작용과 성적 욕망 위에 씌워놓은 허상이며 오랫동안 감춰졌던 낭만적 신비는 이미 들통나고 만 것이라는 회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허무적, 분해적 감각방식이 어찌할 도리없이 책 속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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