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주한 <공인회계사>
어제 8월15일은 한국의 광복절. 조선이 35년의 일제 강점기를 벗어나 해방이 된 날이다. 당시에 많은 민족 지도자들이 있었다. 이상재, 서재필, 이승만, 김구, 주시경, 안창호, 안중근, 신채호, 박용만, 그리고 조만식 등. 상황이나 시각에 따라 그들에 대한 평가가 다르지만, 모두 암울했던 시대의 선각자들이다.
특히 필라델피아에서 비즈니스를 하면서 독립운동을 했던 서재필 박사가 눈에 띈다. 20세에 갑신정변의 실패, 가족의 몰살,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화물선.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의 이민 생활은 참담했으리라. 그래도 낮에는 막노동을 하면서 저녁에는 영어를 배우고 교회도 나갔다.
우여곡절 끝에 미국 시민권을 받았으니 한인으로는 최초였다고 한다. 나중에 문구점과 인쇄소, 가구점 등을 운영했다. 거기서 번 많은 돈을 독립운동과 한인단체 활동에 썼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 신문에 일본의 탄압을 알리는 글들을 꾸준히 올렸다. 서재필 박사는 그러나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두 개의 암과 싸우다 결국 사망한다.
생활이 나태해질 때마다 JFK 공항에 간다. 처음 미국 땅을 밟았을 때의 그 초심을 다시 갖고 싶어서다. 130년 전, 샌프란시스코 항구에 첫 발을 내디딘 서재필 박사는 얼마나 막막했을까? 한국인이 단 한명도 없는 곳에서 느꼈을 외로움은 얼마나 컸을까? 변두리의 판잣집을 전전하며 살았던 참담한 미국 생활의 초기. 언어 장벽은 물론이고 당시에 유색 인종에 대한 차별은 말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서재필 박사와 초기 이민자들이 살았던 시대와 비교하면 지금은 너무 좋아졌다. 다들 비즈니스가 힘들다고 하지만 적어도 그들이 겪었던 노골적인 인종차별은 없다. 다들 외롭다고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한국말을 주고받을 사람들이 주위에 있다. 지금도 떠나온 조국이 걱정스럽지만 100년 전 이민 선배들이 느꼈을 정도의 걱정은 아니다.
마음이 느슨해지면 그들의 힘들었던 삶과 그들이 뿌린 씨앗을 생각해본다. 행동이 무기력해지면 62세의 나이에 의대에 진학한 서재필 박사를 떠올려본다. 그리고 가끔은 JFK 공항에 나가 따뜻한 커피를 마신다. 돌아오는 길의 마음가짐은 갔던 길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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